[전문가 칼럼]“아크차단기 설치 제도 더 이상 미뤄선 안돼”
[전문가 칼럼]“아크차단기 설치 제도 더 이상 미뤄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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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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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아이앤씨테크놀로지 사장
최인규 아이앤씨테크놀로지 사장

[일렉트릭파워]해마다 추워지면 전에 사용했던 전열기나 전기매트를 꺼내 겨울을 준비한다. 하지만 매년 9,000여 건 이상 발생하는 전기화재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2018년만 해도 전체 화재 4만여 건 중 전기로 인한 화재가 1만471건, 그로 인한 인명 피해는 553명, 재산 피해는 1,200억원을 기록했다.

정부는 1976년 감전사고와 전기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누전차단기 국내표준 KSC 4613을 제정했다. 또한 주택 인입구에 설치하도록 법제화함으로써 감전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감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96년 211명에서 2018년 19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전기화재는 1996년 1만7건에서 2018년 9,240건으로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현재 설치돼 있는 차단기에 전기화재의 주된 원인인 아크 특성을 검출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1만여 건의 전기화재 중 85%가 전기합선 등 단락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2년 단체표준인 FIS 015 아크경보기 인정기준을, 2014년 아크차단기 관련표준인 KSC IEC62606 사고아크 검출장치에 대한 일반조건을 제정했다. 2016년에는 건설기준과 시설규정에도 반영했다.

또한 문화재청에선 목조문화재 보호법과 소방시설 가이드라인에 아크차단기 설치에 관한 사항을 명시했다. 201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을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미비점으로 인해 실효성을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아크차단기 필요성을 인식하고 1999년 UL1699 AFCI(arc–Faukt Circuit Interrupter) 표준을 제정했다. 이어 2002년 주택의 아크차단기 설치의무 제도를 시행했다. 그 결과 미국 전체의 연간 전기화재가 65% 감소했다는 분석 결과를 미국방화협회(NFPA)에서 발표했다.

2013년에는 국제표준인 IEC 62606 AFDD(Arc Fault Detection Device)가 제정돼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캐나다·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중국·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시험표준 및 설치기준 마련과 함께 아크차단기 설치의무 제도를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국내 아크차단기 도입이 표류하고 있는 동안 국외에서는 이튼, 지멘스, 제너럴일렉트릭, 슈나이더가 아크차단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아크차단기 시장은 매년 약 3조7,000억원 규모다. 그 중 지멘스가 약 1조7,0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향후 수출전략 사업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국내에선 아직 대규모 생산 활동을 못하고 있다. 다만 아크차단기와 아크검출장치를 소규모로 제조하는 업체는 3개사다. 제조를 준비 중인 회사도 2개사 정도가 있다. 관련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관심 있는 여러 제조업체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아크고장 검출장치와 관련된 국가적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에서는 품질과 성능이 확보된 신뢰성 있는 인증제품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인증제도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시급한 대책으로는 아크고장 검출 및 차단장치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요령의 안전인증대상 전기용품에 추가해 안전인증을 적용토록 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인증기관을 지정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제품들이 양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 캐나다 등 유럽 국가들처럼 건축물 설치기준에 아크차단기 등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령을 제정하거나 전기설비기술기준에 명시해 필요한 장소에 설치하도록 하는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

2002년 아크차단기 설치의무제도를 시행한 이후 미국 전체의 연간 전기화재가 65% 감소했다는 분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기관에서 명백한 사실을 도외시하고 시장이 성숙하기만을 기다리며 법제화를 미루는 것은 자칫 직무유기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동안 관련 협회에선 법과 제도 시행을 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몇 차례 개최했다고 한다. 다만 제품의 신뢰성, 시장의 성숙도, 설치대상 선정 적정성 여부 등의 이유로 아직까지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논하기보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제조사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국민은 필요한 제품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지난해 9월 소비자보호원에선 노후주택 전기화재 안전실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신규주택 전기화재 사고예방을 위해 아크차단기 설치 의무화 제도 시행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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