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풍력터빈 브랜드 없이 세계 해상풍력 선두 ‘우뚝’
영국, 풍력터빈 브랜드 없이 세계 해상풍력 선두 ‘우뚝’
  • 박윤석 기자
  • 승인 2019.09.2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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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앞장서 시장 활성화… 6개 계획지구 순차 개발
국제 분업체계 기반 공급망 구축… 개발비용 절감
400MW 규모의 영국 램피온해상풍력단지 전경
400MW 규모의 영국 램피온해상풍력단지 전경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 가동 중인 해상풍력 가운데 약 35%인 7.9GW가 영국에 설치돼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실적을 기록한 독일과의 격차는 1.5GW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풍력설비용량 보다 큰 차이다.

영국이 첫 해상풍력 실적을 거둔 시기는 2000년이다. 100MW 이상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본격적으로 건설한 것은 2010년 들어서다. 영국의 해상풍력 발전비중은 2010년 0.8%에 불과했지만 2017년 6.2%까지 확대됐다. 매년 설치용량이 증가 추세에 있어 2020년이면 1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이 세계 1위 해상풍력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얕은 수심과 지반 상태·풍부한 바람 등 천혜의 자연조건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해상풍력 선두국가 대부분이 유럽국가인 점도 이런 영향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더라도 이를 활용할 기술과 인프라가 없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영국은 40여 곳에 달하는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는 동안 설계를 비롯해 개발·설치·유지보수 등 프로젝트 전주기에 걸친 트랙레코드를 쌓으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해상풍력을 미래 핵심 신성장 분야로 삼고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나선 것이다. 오랜 기간 쌓아온 서비스 엔지니어링·금융·보험·해양 분야 전문성 또한 영국이 해상풍력산업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이 풍력터빈 브랜드 없이도 세계 해상풍력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영국은 해상풍력산업 서플라이 체인을 자국 기업만으로 구축하기 보단 글로벌 협업을 통한 산업화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안정적인 현지 공급망 확보는 기술개발과 비용절감으로 이어져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개방적인 산업구조 덕분에 해외기업이 투자한 제조시설과 운영사무실이 늘어나면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선순환구조가 만들어 지고 있다.

지멘스가메사는 2016년 험버 지역 헐 항구에 풍력터빈 블레이드 공장을 설립했다.
지멘스가메사는 2016년 험버 지역 헐 항구에 풍력터빈 블레이드 공장을 설립했다.

해외기업 공급망 참여로 경쟁력 향상
GWEC(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에 설치된 해상풍력은 23.1GW 규모다. 국가별로는 영국이 7.9GW로 가장 많고 ▲독일 6.4GW ▲중국 4.6GW ▲덴마크 1.3GW ▲벨기에 1.2GW ▲네덜란드 1.1GW 순이다. 우리나라도 73MW 성과를 기록해 30MW를 설치한 미국보다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해상풍력 개발실적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을 포함한 유럽국가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평균 8~9m/s에 달하는 바람이 연중 일정하게 불어 높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선도국가 대부분의 공통점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위권의 풍력터빈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에너콘·노덱스악시오나 ▲덴마크 베스타스 ▲중국 골드윈드·유나이티드파워·밍양 등이다. 지멘스가메사의 경우 독일 지멘스와 스페인 가메사가 2017년 4월 합병하면서 본사를 스페인으로 옮겼다.

프로젝트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해상풍력 개발비용에서 풍력터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0% 내외다. 풍력터빈 비중이 50%를 넘나드는 육상풍력과 달리 해상풍력은 하부구조물·해저케이블·사업성분석·시공·유지보수 등 기자재 이외 부문의 비중이 상당하다. 그만큼 연관 산업 육성을 통한 비즈니스 창출 기회가 많은 셈이다.

브루스 클레멘츠 영국 국제통상부 해상풍력부문 전문가는 국제 분업체계에 기반한 혁신적인 공급망 확보를 통해 해상풍력 경쟁력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브루스 클레멘츠 전문가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다양한 해외기업들을 해상풍력산업 공급망에 참여시켜 개발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며 “해상풍력 분야의 연관 산업이 다양한 만큼 국가 간 공급망 협력은 해상풍력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상풍력 개발사는 물론 관련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전체 프로젝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영국의 경우 해상풍력의 보조금 역할을 하는 발전차액계약인 CFD를 통해 혁신적인 공급망 구축을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영국에는 풍력터빈과 개발·운영 분야에서 각각 세계 해상풍력 1위에 올라있는 지멘스가메사와 오스테드가 진출해 블레이드 제조공장과 운영센터를 가동 중이다. 우리나라 기업 씨에스윈드도 영국 캠벨타운에 풍력터빈 타워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해상풍력산업 전반에 걸친 서플라이 체인을 자국 내에 갖추고 있어 속도감 있는 프로젝트 개발이 가능하다. 이는 전체 프로젝트 개발비용을 낮추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생산시설 확대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

영국의 해상풍력 공급망은 블레이드·발전기·제어시스템·해저케이블·베어링·하부구조물 등 산업계 전반에 걸쳐 구축돼 있다.

그림스비 항구 인근에 위치한 오스테드 해상풍력 운영센터에는 직원 25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혼시해상풍력단지 모니터링 화면
그림스비 항구 인근에 위치한 오스테드 해상풍력 운영센터에는 직원 25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혼시해상풍력단지 모니터링 화면

6개 항구도시 중심 해상풍력 확장
영국이 해상풍력 분야에서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정부 주도로 추진된 중장기 해상풍력 개발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시기에 대규모 시장이 순차적으로 열리다 보니 기업들의 투자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해상풍력 확대와 관련한 영국 정부의 정책 신뢰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은 해상풍력단지 조성에 적합한 6개 지구를 선정해 2000년부터 순차적으로 개발 중이다. 라운드 1·2·3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해안 가까운 곳에 소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을 시작으로 점차 먼 바다로 나가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영국 해상풍력 개발지구는 ▲노스이스턴(North Eastern) ▲티스벨리(Tees Valley) ▲험버(Humber) ▲그레이트야머스·로웨스터프(Great Yarmouth·Lowestoft) ▲사우스이스트(South East) 등 동쪽 해역에 5곳이 몰려있다. 서쪽 해역에 위치한 리버풀시티(Liverpool City)도 해상풍력 개발지구로 선정됐다.

6개 해상풍력 개발지구의 공통점은 물류 편의성을 갖춘 항구도시란 점이다.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을 위해선 블레이드·나셀·타워 등 풍력터빈 기자재를 비롯해 하부구조물·해저케이블을 보관·운반할 수 있는 배후항만이 필수적이다.

해상풍력단지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배후항만은 상황에 따라 풍력터빈이나 하부구조물을 조립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프로젝트 개발비용 절감에도 효과적이다. 풍력단지 건설 후 효율적인 단지 운영을 위해선 현장과 가까운 곳에 배후항만이 조성된 것이 유리하다.

험버 지역은 석탄·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물동량이 줄어 지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림스비 항구에선 일부 어민을 제외하곤 지역주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험버 지역은 석탄·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물동량이 줄어 지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림스비 항구에선 일부 어민을 제외하곤 지역주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험버, 해상풍력 클러스터 탈바꿈… 지역경제 활력
영국의 6개 해상풍력 개발지구 가운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곳은 험버 지역이다. 5GW 규모의 혼시해상풍력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산업체·연구기관·학교 등 해상풍력 클러스터 조성이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가 해상풍력을 통한 일자리 창출 모델을 발굴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림스비와 헐 항구를 끼고 있는 험버 지역은 석탄·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물동량이 줄어 지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지역주민들이 일자리로 유지하던 어업활동도 눈에 띄게 줄어 항구 주변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동력을 잃은 지역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바로 해상풍력이다.

독일의 경우도 쇠락해진 항구지역이 해상풍력 배후항만으로 변모하면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험버 지역에는 글로벌 해상풍력 기업인 오스테드·지멘스가메사를 비롯해 정부출연 기술연구센터인 ORE 캐타폴트와 헐대학, THMA 등 다양한 해상풍력 관련 산학연이 클러스트를 이루고 있다. 연간 3만6,000여 척에 달하는 이 지역 선박운항을 관리하는 항만관리 정부기관인 ABP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2017년 동에너지에서 사명을 바꾸고 해상풍력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한 덴마크 국영 에너지기업 오스테드는 그림스비 항구 인근에 해상풍력 운영센터를 두고 있다. 총 5GW 규모의 혼시해상풍력 프로젝트 가운데 1단계인 1,218MW를 내년 완공할 예정이다.

오스테드 관계자는 “혼시1·2 해상풍력 건설을 위해 현재 그림스비 운영센터에 250명이 근무 중인데 프로젝트 완료 시점에는 400명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며 “프로젝트 건설기간 동안 2,0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멘스가메사는 2016년 약 2,500억원을 투자해 험버 지역 헐 항구에 풍력터빈 블레이드 공장을 설립했다. 설비투자와 부두증설 등을 통해 약 1,0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ORE 캐타폴트는 기술개발을 통해 중소기업의 해상풍력 분야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센터다. 아이디어 수준의 기술을 산업화 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맡고 있다. 영국 정부는 ORE 캐타폴트에 향후 5년간 7,350만 파운드(약 1,100억원)를 추가 지원해 해상풍력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기술력을 키워 제품개발로 이어지는 산학연 협업구조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THMA(Team Humber Marine Alliance)는 해상풍력 분야 비영리기관으로 해상풍력 개발·엔지니어링·건설·유지보수 등 200여 회원사가 활동하고 있는 협의체다. 해상풍력 프로젝트 전주기에 걸쳐 회원사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해상풍력 공급망과 배후항만에 대한 연구활동도 펼치고 있다.

ORE Catapult 실험동에서 테스트 중인 풍력 블레이드(사진=ORE Catapult)
ORE Catapult 실험동에서 테스트 중인 풍력 블레이드(사진=ORE Catap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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