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고양이와의 전쟁
도둑고양이와의 전쟁
  • EPJ
  • 승인 2008.12.1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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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꽁트마당]④

오 씨가 마당에서 호미자루를 갈아 끼우고 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그 놈이 염소간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겨울부터 동네에 나타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아먹던 바로 그 도둑고양이. 오늘 아침에는 제사 때 쓰려고 어제 읍에서 사온 조기까지 먹어치웠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오 씨가 손에 들고 있던 호미를 그놈을 향해 힘껏 던졌다. 날아간 호미는 그놈의 꼬리를 살짝 스치며 작년 가을에 사온 염소의 왼쪽 눈에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염소가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다시 옆에 있던 망치를 집어 들고 장독대 쪽으로 달아나는 그놈을 향해 번개처럼 제2탄을 날렸다.

그 순간 ‘아차!’ 했지만 ‘와장창-’ 하는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다시 그의 귓구멍을 후벼 팠다. 간장을 담아놓은 항아리가 박살이 났다.

그놈은 어느새 헛간으로 도망쳐 버렸고, 시커먼 간장이 마당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호미에 눈을 맞은 염소는 쓰러져서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왼쪽 눈동자가 반쯤 삐져 나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지난 겨울부터 그의 집에서 잃어버린 닭이 다섯 마리였다. 게다가 오늘은 염소까지 저렇게 조져 놨다. 그놈이 우리 마을의 닭을 도대체 몇 마리나 잡아먹었는지 집집마다 아우성이었다.

여섯 가구밖에 살지 않는 시골마을이지만 한 집에 세 마리씩만 쳐도 모두 열여덟 마리가 아닌가.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어디 두고 보자. 꼭 내 손으로 잡아서 요절을 내고 말겠다!’

그는 헉헉거리고 있는 염소를 고무통에 담아 지게에 얹어 개울로 갔다. 이왕 저렇게 된 거, 가족들 보신이나 시킬 생각이었다. 며칠이 흘렀다. 그가 마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을 때 그 도적놈이 또 장독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마당에는 그의 집 개 메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메리, 저 놈 물어!’ 하고 고함을 질렀다. 메리가 쫓아가자 그놈은 잽싸게 뒷간으로 도망쳤다. 메리를 따라 그도 뒷간으로 뛰었다. 재래식 변소의 똥통 위의 발 딛는 자리 사이에는 삭아빠진 양철판이 얹혀 있었는데 뛰어가던 메리가 그것을 밟는 바람에 순식간에 똥통 속에 빠지고 말았다.

걸쭉한 똥통 속에서 메리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오 씨가 엎드려서 메리의 머리를 잡고 끌어올려 마당에다 내려놓았다. 메리가 온몸을 털어댔다. 온갖 험한 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랑채 문의 창호지며,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며, 봄에 새로 회칠을 한 벽에도 온통 똥찌꺼기로 칠갑을 했다. 구린내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오 씨의 옷, 얼굴에까지 똥물이 튀었다.

“이런 ×팔!” 오 씨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는 메리와 함께 집 앞 개울로 뛰어가 옷을 입은 채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메리부터 대충 씻기고 나서 자신도 씻었다.

며칠을 끙끙 앓으며 고심하던 오 씨는 드디어 읍내에 가서 공기총을 구입했다. 총을 사오면서 그는 미친 사람처럼 자꾸 실실 웃었다. 총에 맞아서 자빠져 있는 그놈의 상판때기를 생각해보니 자꾸만 입가에서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날 저녁 오 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총이 있으니 그놈이 나타나면 즉시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모두들 기뻐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흘이 가고 닷새가 지나가도 그 도적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집에는 여러 번 나타났던 모양이었다. 그때마다 오 씨에게 기별이 왔으나 막상 총을 들고 가면 그놈은 번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 씨가 점심을 먹고 대문을 나서는데 집 앞의 소 매어둔 축사에 그놈이 살금살금 기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가만히 쾌재를 부르며 다시 집으로 들어가 총을 들고 나왔다.

축사에는 소가 누워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그가 다가서자 소가 주인에게 인사라도 하듯 벌떡 일어섰다. 그는 지게를 들고 와서 소 뒤에다 놓고 그 위에 납작 엎드렸다.

‘흐흐흐, 오늘이 바로 네놈 제삿날이다.’ 그는 총알을 장전하고 총의 노리쇠를 당기며 격발 준비를 했다. 5분, 10분….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그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꼭 잡고야 말겠다고 재차 각오를 다지며 꼼짝 않고 지게 위에 엎드려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의 꼬리가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쏴-’ 하면서 뜨뜻한 액체가 그의 머리와 목덜미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소가 오 씨의 머리에 오줌을 갈긴 것이다.

그의 입에서 또 험한 욕이 막 나오려는 찰나, 저쪽에서 옆집 구씨 부인이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는 창피한 생각에 얼른 뒷걸음질 쳐서 개울로 뛰어 내렸다. 발을 잘못 디딘 탓에 한쪽 발목이 몹시 욱신거렸다. 구월 초순이었지만 물은 꽤 차가웠다.

그는 수심이 좀 깊은 곳에 들어가 일어섰다 앉았다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머리를 몇 번 더 헹구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쳐내면서 보니 그놈이 축사의 울타리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오 씨가 급히 총을 찾았으나 총은 저만치 둑 위에 있었다.

그가 잽싸게 뛰어가 총을 집어 들었을 때 그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밤 오 씨는 잠꼬대를 했다. 자면서 ‘저놈 잡아라!’ 하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마누라와 아이들까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똥물 벼락에다 소오줌 벼락까지 맞고 나더니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고 마누라가 구박을 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아, 그런데 오 씨가 소오줌을 뒤집어쓴 지 사흘째 되는 날 기어코 허망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 손에 죽어야 할 그 도적놈이 비명횡사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날 아침, 옆집 구 씨 내외가 논에 가다가 마을 앞 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은 고양이 시체를 발견했는데, 대가리는 멀쩡해서 자세히 보니 틀림없이 그놈이었단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도로에 나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놈을 잡으려고 비싼 총까지 장만하고, 잠자면서 헛소리까지 한 오 씨는 그놈의 시체를 보는 순간 물에 풀어진 소똥처럼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있었다.

<작가·(사)전력전자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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