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을 뛰어넘는 인간애의 드라마, 사랑을 꿈꾸다.
시대상을 뛰어넘는 인간애의 드라마, 사랑을 꿈꾸다.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05.03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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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타인의 삶

동서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후, ‘지구촌’을 외치는 사람들과, 무한 경쟁 시장체제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자연스레 이데올로기는 그 화두에서 점차 멀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라는 서슬 퍼런 칼날에 허리가 잘린 한반도의 지난 반세기는 이데올로기로 점증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네 할아버지?할머니는 ‘우리 편’과 ‘빨갱이네 편’으로 이분된 사회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우리의 시대 상황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낀 동네북으로써의 역할에 항상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이기에, 이데올로기라는 단어에 대해 한국인만큼 민감한 느낌을 갖는 나라는 흔치않다. 그리고 패전국의 멍울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분단국가였던 독일 또한 이데올로기란 단어에서 받는 느낌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 <타인의 삶>은 2007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2006 유럽영화상 최우수 작품상/남우주연상/각본상, LA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2006 독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및 7개 부분 수상 등 독일 국내외로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다. 특히, 독일영화상 주요 11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전례 없는 신기록을 남겨 독일영화의 전성기를 점쳤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 영화인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독일영화상의 최우수 작품상 수상으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독일의 문화예술상금 중 최고액을 상금으로 받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당시 비밀경찰(스타지)의 감시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철저히 조사당했던 동독의 국민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 뒤에 숨어있던 10만의 국가정보국 요원들. 한편, 그들 사이에 있는 20만 명이 넘는 밀고자. 이처럼 먹이 피라미드식 정치구조 한가운데서 어쩔 수 없는 공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진지한 방식으로 짚어낸 영화 <타인의 삶>. 이 영화는 건조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그들의 ‘인간적 이데올로기’를 얘기하고 있었다.

나라와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냉혈인간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중대 임무를 맡는다. 그는 드라이만의 집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도청하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보고한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이만이 가진 작품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인인 크리스타로 인해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을 느끼고 인간애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로 인해 비즐러의 삶에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파문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냉혈동물에 가까웠던 동독 비밀경찰이었던 비즐러는 드라이만이라는 ‘타인의 삶’에 애정을 느끼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항상 남들과 벽을 쌓아놓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 예술과 인간에 대한 신뢰로 가득한 드라이만의 삶과 겹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상불손자를 취조실에 가둬두고 잠을 안 재워가며 자백을 받아냈던 그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눈물을 흘리고, 시를 음미하며, 뚱보 창녀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 극중 드라이만의 말에 따르자면 ‘소나타를 사랑하는 레닌의 감성을 가진 옆집 아저씨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라이만을 사랑하고, 그의 예술에 대한 애정을 사랑하게 되며, 또한 그의 연인인 크리스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특히나 통일 전의 동독과 같이 억압된 사회 속에서 미약한 힘의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아성찰의 기회는 무척이나 한정적일 수밖에 을 것이다. 70년대 우리네 초상화가 그렇지 않은가. 당시의 삶은 크나큰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한 부속품으로써의 역할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적어도, 전체적인 시각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다. 항상 단순 부속품 이상의 뭔가를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개척해야만 했던 뭔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일 수도 있다. 그게 뭐가 됐든 우리는 그런 스스로의 신념과 의지를 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드라이만이 자신의 글과 예술가가 가져야만 했던 자유를 사랑했듯이, 크리스타가 배우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살피려 했듯, 그리고 비즐러가 ‘타인의 삶’을 감촉함으로써 스스로 ‘신’에 가까웠던 국가를 배신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립을 배운다. 그리고 그러한 자립에 따른 외로움은 타인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수순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한다. 때문에 사랑은 사회와 권력이 만들어놓은 높고 견고해 보이는 벽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의 두려움보다, 더 위대하고 강력한 것이다.

시대상을 뛰어넘는 인간애의 드라마 <타인의 삶>은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과 사회, 체제와 자유, 안정과 애정, 두려움과 용기에 대한 이유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마치 ‘타인의 삶’처럼 내 머릿속에서 관음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 영화. 누구에게나 꼭 한번 보라고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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