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 epj
  • 승인 2008.11.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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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의 꽁트마당③|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

분당으로 가는 친구들이 택시를 타자마자 나는 강남역을 향해 뛰었다. 뛰면서 다시 시계를 보았다. 11시 45분, 아무래도 지하철 2호선은 끊어진 것 같았다. 전에 다니던 직장 상사의 모친상 연락을 받고 저녁 무렵 강남성모병원에 갔다가 동기생들을 만나 2차, 3차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저만치 강남역 입구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서 지하철역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창구로 가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물어보았더니 조금 전에 2호선 막차가 떠났다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도로 밖으로 나왔다. 역 입구 인도에는 사람들이 차도로 뛰어들며 중구난방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잠실-’ ‘신림동-’ ‘동작동-’

내가 사는 개봉동을 외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택시가 올 때마다 차도로 뛰어 들어가 열심히 ‘개봉동-’을 외쳤다. 서너 대가 그냥 지나갔다. 다시 인도로 올라왔다. 지하철이 방금 끊어진 탓인지,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좀 더 있어야겠구만.’ 나는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다. 술이 좀 깨니까 이젠 배가 고팠다. 밥은 안 먹고 소주, 맥주에다 술안주만 집어먹은 것이 생각났다. 나는 인도 뒤쪽 약간 후미진 공터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우동을 시켰다. 내가 앉은자리 바로 옆에서 이제 겨우 열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 셋이 우동을 먹고 있었다. 짙은 눈 화장을 하고 귀에는 귀고리까지 하고 있었지만 모두들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벌써 다 먹었는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로 내 옆에 앉은 아이가 자꾸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눈매가 초롱초롱한 아이였다.

그때 ‘삐리리릭’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가운데 앉은 아이가 핸드폰을 들고 ‘네, 네, 금방 갈께요’ 하더니 ‘얘, 금수장인데, 둘이야 둘’ 했다. 그리고는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아이가 또다시 곁눈질로 날 힐끔거리며 ‘너희 둘이서 가. 난 괜찮아.’ 했다.

담배를 물고 있던 아이가 재빨리 우동값 계산을 하고는 ‘빨리 가자. 늦으면 혼 나.’ 하면서 일어섰다. 그 옆에 앉은 아이도 ‘미안해….’ 하면서 일어섰다. 두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옆에 앉은 아이가 혼자 남았다. 자세히 보니 윗머리의 한 부분이 노랗게 물들어있었고, 배꼽이 보일락말락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축 내려 입고 있었다. 눈매가 예뻤다.

나도 우동값을 치르고 일어섰다. 그 순간 ‘아저씨!’ 하며 그 아이가 불렀다. 내가 나가다 말고 뒤돌아보자 그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저 갈 데가 없어요. 어디든지 좀 데려가 주세요.”

어이가 없었다. 어느새 그 아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컸다. 나는 다시 택시를 잡으려다 말고 서초동 쪽으로 걸었다. 그 아이가 내 팔에 바짝 붙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맨살의 감촉이 풋풋했다. 싫지는 않았다.

“몇 살이지?”

“열일곱 살이요.”

“고등학생이니?” 내가 다시 물었다.

“……….”

“아까 두 친구는 어디로 갔지?”

“자꾸 묻지 마세요, 아저씨. 우리 어디 들어가요. 그럼 모두 얘기해 드릴께요. 마침 저기 있네요.” 

저만치 OOO모텔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나는 점잖게 타일렀다. 

“저런 데 가면 쓰나. 집에 가야지. 집이 어디지?”

“여기서 멀어요. 광명시예요. 지금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어요.”

“그래? 마침 잘 됐군. 난 집이 개봉동이야. 그럼 우리 같이 택시 타고 가자. 차타고 가면서 얘기하자.”

나는 길옆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빈 택시가 왔다. 무조건 뒷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다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개봉동에서 절 혼자 두고 가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말할께요. 아까 그 포장마차에서 난 아저씨를 찍었단 말예요.”

“뭐라고? 날 찍어? 응, 알았어."

날 찍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했다. 그제서야 그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친구들하고 광명시에서 같이 자취를 하는데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학교에 다닌단다. 토요일은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강남으로 나온단다.

강남에 있는 러브호텔 몇 군데와 거래를 한단다. 밤 10시쯤 강남역 주변에 대기하고 있으면 핸드폰이 온단다. 그래서 어느 모텔인지, 몇 명이 필요한 지 알려주면 10분 이내에 가야 된단다.

하룻밤에 10만원도 벌고 재수가 좋은 날은 30만원도 번단다. 일년 전 고1 때 반 친구의 주선으로 이 일을 하게 됐는데 토요일 밤에 버는 돈이 낮에 나가는 직장의 한 달 월급보다 많단다.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꽤 많이 있단다.

‘부나비들이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말하는 직장이 구로공단이라는 것, 그리고 다닌다는 학교도 시원찮은 야간전수학교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차가 개봉동 입구에 왔다. 내가 운전기사에게 그 아이를 광명시까지 태워주라고 말하고 택시비를 계산하려 하자, ‘아저씨가 그냥 가시면 저 오늘 공친단 말예요’ 하며 따라 내렸다. 오늘 공친다는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알았어, 따라와.”

나는 앞장서서 근처 모텔로 들어갔다. 그 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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