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국민들에게 드리는 가을편지
우울한 국민들에게 드리는 가을편지
  • epj
  • 승인 2008.11.1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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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예인 몇 사람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전국이 시끄러웠다. 언론이나 수사기관의 발표는 자살의 발단이 된 깊은 사연이야 어찌됐던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라고 했다.

한사람은 사업 빚에 쫓기다 그리했다 하고 한사람은 그 사건의 원인 제공자라는 악성 소문으로 괴로워하다 그리됐다 해 자살 사건보다 악성 댓글이 사회적 문제 이슈가 됐다.

첫 서리가 내린 지도 벌써 열흘은 지났다. 지난 밤엔 강원도 깊은 산간 지역에는 첫 큰 눈이 내렸다. 필자는 시골에서 조그만 농장을 하고 있어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사는 편이다. 농촌에서 서리가 내렸다는 이야기는 한해 농사가 완전히 끝났다는 이야기와 같다.

난방을 해 하우스 농사를 하는 농가를 제외하곤 이제 농부들은 겨울 채비와 메주 담그기, 김장 등 소소한 일만 마무리 하고 나면 긴긴 겨울을 무료한 시간과 함께 지내게 될 터다.

얼마 전 초가을 필자는 농장의 주택을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집수리를 하고 있었다. 몇 년을 벼르다 시작한 일이었는데 집수리를 한다고 온통 집을 엉망으로 부숴 놓고 있을 때 집수리를 맡긴 인테리어 업체의 사장이 갑자기 연락이 왔다. 부인이 갑자기 사망해 공사를 중단해야겠다고.

필자는 그 부인과는 몇 차례 차도 마시고 했던 사이였고 참 밝고 고운 인상이었는데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부 모두 독실한 종교인으로 법 없이 사실 분들이고 항상 성실한 모습이 좋았던 분들이어서 더욱 놀란 마음에 영안실로 문상을 가보니 자살이라나. 평소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다.

이해가 안 간다. 성실한 신자이고 부부 간의 금슬도 좋았던 것 같고 생활인으로서 크게 경제적인 문제도 없었던 가정으로 알고 있다. 도회지 출신으로 결혼 후 시골에 이주해 적응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졸지에 홀몸이 된 남편은 빈소에서 혼자 울먹거리고 있을 뿐이다. 고등학생 자녀가 둘이라고 한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위로의 몇 마디를 전하고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눈앞이 뿌옇게 된다. 

올해는 내게 그런 한 해인가보다. 금년 초봄에는 필자의 농장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시던 분이 경제적인 문제로 괴로워하시다 농약으로 자살한 일도 겪고 보니 이 가을 더욱 마음이 저려 온다.

왜들 이러나 싶다.

집수리를 맡으셨던 분이 부인을 떠나보내고 집수리를 마무리 한다고 다시 나타난 것은 2주가 훨씬 지나서였다. 커피 한 잔을 놓고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이 혼자 몸으로 자식들 데리고 어떻게 견딜까 싶어 안타깝다.

시골에서는 겨울 동안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한 해 동안 죽어라고 지은 농사가 돈이 되기는 커녕 당연히 금년에는 조금 갚아야 할 농협 빚은 더 늘어나게 되고 그에 따라 가정은 불화의 연속이고 겨울이다 보니 농사꾼의 입장에서 할 일은 없고 갈 데도 없고 지인들과 신세타령 소주 몇 잔 끝에 그런 사건들이 많이도 난다.

금년 한해 이 나라 농촌의 현실은 몹시도 힘들어졌다. 도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름 값 상승으로 비료와 사료 등이 곱절이나 오른 상태에서 경제 위기로 소비마저 위축돼 주위의 농사꾼들이 모두 맥이 없이 지내고 있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한해 농사를 끝내고 내년 농사를 대비해 농토를 새로 만들고 보수하고 한다고 중장비 소리가 시끄러울 때지만 올해는 조용하다. 농촌에 희망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미국에서 불똥이 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도시인들은 도시인들대로 반 토막 난 펀드와 주식으로 고통을 겪고, 가계는 고금리에 시달라고, 기업은 도산하고, 실물경제는 더욱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지금 올 겨울 우리 민중들은 얼마나 또 허무맹랑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화려한 컬러 텔레비젼을 통하여 들어야 할까?

작금의 이런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은 세계를 선도한다는 강대국들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일 뿐이기에 더욱 우울증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미울 따름이다.

경제만은 살리겠다던 대통령과 여당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 잡기와 흠집 내기에만 혈안이 된 야당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인가?

말없이 열심히 살아온 국민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지금 우리는 우리네 소시민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없는 상황, 마치 곧 터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피할 수도 없이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의 초침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절망과 번뇌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 세계가 힘든 시대이고 올 연말은 외신의 보도처럼 어느 해 보다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기대를 전 세계가 크게 갖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진정으로 변화(Change)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필자 또한 넋두리에 가까운 푸념만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세계의 맹주인 미국의 새 지도자에 가냘픈 희망을 걸어본다.

하지만 우리 국민 여러분.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시고 꿋꿋하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나온 힘든 시절들 우리는 잘 이겨오지 않았는가?

지금 이 시대에는 힘들지 않은 이 아무도 없다. 시련 끝에 행복은 오기 마련이라는 진실을 믿어야 한다. ‘허구헌 날’ 꼭 이렇게 살고 싶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저는 쓰라린 고통 끝의 행복이 진정한 기쁨이 되고 희열이 됨을 믿기에 부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리고 열심히, 나아가 현명하게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일상의 성실을 말하고자 한다.

제발 자신보다 더 힘들어 하는 분들의 손을 진심으로 꼭 잡아 주자.

그리고 첫눈이 내리면 간절한 마음으로 자그만 소망들을 기원하자. 그리하면 조금이나마 행복해 질 것이다.                      <신구대 교수·채향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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