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 휴업 전기공업계 ‘돌파구’ 없나
개점 휴업 전기공업계 ‘돌파구’ 없나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8.08.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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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고유가에 물량 감소 원자재가 상승 ‘다중고’

“발주 물량도 없지만 수주해 제품을 만들어도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황에서 공장을 가동할 이유가 없지 않나. 올해는 어떻게 넘긴다 하더라도 내일이 불투명한 게 더 문제다. 사업의 계속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중대기로에 놓여 있다”는 한 사업주의 말처럼 채산성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전기업계의 실상을 드려다 본다.


전기공업계의 경영악화가 심해졌다는 내용이 어제 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지만 특히 중소기업의 악화는 유류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으로 최근 들어 더욱 사면초가로 빠져들고 있다.

이는 단품의 경우보다 복합적인 자재의 사용이 불가피한 변압기나 배전반 업체 등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변압기업계의 경우 상반기 내내 물량 감소에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상당수 기업들이 ‘개점휴업’ 상태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전 변압기 입찰에서 등록업체 중 절반 이상이 단 한 대도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자칫 업계의 무더기 도산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원자재인 강판과 절연유, 동 등은 상승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고 가격인상의 압박은 날로 심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올 들어 세 번째로 지난 7월 1일부터 변압기용 강판을 톤당 35만원(약 10%)으로 인상했다.

또 동은 상반기에만 40% 이상, 강판은 20% 이상, 절연유 5% 이상 올랐고 특히 변압기 강판은 품귀 조짐으로 시중 거래가가 포스코 단가보다 10% 이상 높은 가격으로도 구하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한전 등록업체 3분의 2 ‘수주 제로’

몰드변압기 등 민수시장을 위주로 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지난달 말 사실상 마무리된 한전 단가입찰에서 물량을 수주한 곳은 불과 13개 업체로 한전 등록업체 중 3분의 2가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전 의존도가 큰 20여개의 업체는 앞으로도 개점휴업 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배전용 변압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전이 올해 수급할 물량에 대해 현재 약 10만5,000여대에 대한 계약자를 확정해 발주하고 납품을 받고 있는데 배전용 변압기의 핵심 원자재인 규소강판을 확보하지 못해 완제품을 만들지 못함에 따라 수급 차질이 염려되고 있다.

한전의 배전용 변압기에 쓰이는 핵심 원자재인 규소강판은 포스코에서 공급하고 있는데 직거래를 하고 있는 19개 업체를 제외한 업체들은 조합을 통해 공동구매 해왔다.

하지만 최근 물량부족으로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일부 업체들은 알루미늄을 소재로 하는 변압기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입찰에 참가해 낙찰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앞으로 품질상의 문제 등 납품단가 하락에 따른 부작용이 예상보다 심각할 수도 있음을 예고한다.

30여년간 변압기 사업을 해온 업체의 한 사장은 “발주물량도 없지만 수주해 만들어도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황에서 공장을 가동할 이유가 없다. 올해는 어떻게 넘긴다 하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한 게 더 문제다. 사업의 계속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중대 기로에 놓여 있.”고 요즘의 심정을 토로했다.

배전반업계도 차단기류 인상에 주눅

LS산전은 지난해 11월 차단기 전기종에 대해 출하가격을 업계에서 처음으로 인상한 이후 올해 들어 6월에는 삼화콘덴서, 협화전기공업, 영화산업전기 등이 재료비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했고 현대중공업도 7월 1일을 기해 값을 올렸다. 

그렇잖아도 불안했던 차단기 국내가격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이며 또 수요처인 배전반업체들의 채산성에도 앞으로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LS산전은 진공차단기(VCB), 배선용차단기(MCCB), 누전차단기(ELCB), 기중차단기(ACB), 진공접촉기(VCS), 전자접촉기(MS) 등 차단기류 전기종에 대해 지난해 11월부터 평균 7%, 저압차단기 평균 5.8%, 고압차단기 평균 12.9%를 인상해 모든 대리점에 판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인상시점 2004년 당시 구리값이 톤당 3,000달러대였던 것이 지금은 8,000달러 이상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고, 은도금 가격도 2.5배, 수지물 가격도 2배 인상됐다. 하지만 차단기 시장가격은 실제적으로는 하향화 됐던 게 현실이다. 업체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지만 이번 가격 인상은 자재비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LS산전, 현대중공업 등은 국내 차단기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업체란 점에서 이번 가격인상 조치는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배전반업체의 관계자는 “차단기는 배전반 제조원가의 70% 정도를 차지하는데 업계가 발주량 감소와 가격경쟁 심화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차단기 가격 인상으로 경영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배전반업체 K전기의 한 임원은 “배전반은 한전에서 가격인상 품목도 아니고 민수도 선행수주산업인데 가격을 인상하면 이미 수주한 배전반에 대해서는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해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며 “긴축정책으로 예산이 줄어 물량 자체가 적은데다가 입찰에 참가해도 현실적으로는 최저가 낙찰제와 같기 때문에 좋은 가격이든 나쁜 가격이든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경우가 있어 심지어 입찰을 안보는 게 남는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업계의 어려움은 최근 그동안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신제품 개발과 새로운 브랜드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온 한 배전반업체의 도산으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제조업이 버티고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전은 최근 들어 입찰 때 계약성사율이 예년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밝히고 있다. 계약 물량도 줄었지만 자재비 급등으로 가격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한전의 예상금액과 차이가 나는 것이 가장 문제다.

이 때문에 한전은 요즘 물량의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은근히 염려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변압기 등은 수급에 큰 차질은 없지만 동과 철강 등과 관련 있는 전선과 철탑 같은 품목들이 계약이행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수급에 비상이 걸리고 있다.

계약을 해도 이행을 하지 못하는 업체도 있고 납품을 제대로 못하는 업체까지 생겨 지방의 각 사업소에서는 크게 애로를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금액 조정이 가능한 품목에 대해 90일간 3%의 자재 인상 요인이 있는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게 돼 있는 ‘국가 계약법’에 의거 가격을 인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연간 한 계약건에 대해 예년의 경우 1~2회 정도였는데 반해 올해는 계약건당 4회로 매번 가격조정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전의 품질관련 관계자는 “최근 가격경쟁이 치열해 짐에 따라 원가 이하의 낙찰로 업체들이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납품을 하더라도 저가의 부품을 사용할 수 있어 품질적인 측면에서 불량품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라며 “우리로서는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기준으로 검사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요 원자재 가격동향 불투명

지난 2002년 이후로 4년째 고공행진 중인 구리가격은 지난 2006년 5월 중 사상최고치(historical record high)를 기록한 이후 중국의 재고비축분의 방출과 일부 펀드의 차익실현으로 조정국면에 진입했으나 여전히 과거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국제 동값은 2007년 $6,340/T에서 2008년 $5,200/T, 2009년 $4,300/T, 2010년 $4,?100/T, 그리고 2015년 $3,500/T의 수준으로 전망되며, 과거 평균치인 $2,200/T보다 높은 가격대를 지속할 전망이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현 수준의 구리가격이 지난 2002년의 저점대비 약 400%나 상승한 것을 감안할 때 높은 가격수준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 전해지는 산업생산, 미국의 주택착공면적 등 각종 경기지표와 환율, 파업 등의 변수에 따라 높은 유동성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수급 동향 및 전망으로 공급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증가가 예상되나 단기간 내 큰 폭의 공급량 확대는 어렵고 세계적으로 다수의 광산 및 제련소의 건설투자가 진행·계획 중이므로 장기적으로 구리 공급량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급증가속도는 완만한 수준에 그쳐 현재의 타이트한 수급구조를 단기간에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남미 및 아프리카지역에 위치해 있는 광산의 입지는 지속적으로 공급의 안정성을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광산의 대형화와 과점은 메이저 광산업체들의 가격유지를 위한 공급량 조절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성장은 서구지역의 수요둔화를 상쇄할 만하다. 2007년 세계 동 소비량은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 속에 미국과 서유럽의 소폭의 경기둔화로 인해 전년 대비 3.5% 증가한 1,770만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향후도 평균 2.5% 내외의 성장이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1인당 동 소비량(Apparent Consumption Copper Products Per Capita)은 2.8kg으로 선진국인 미국(7.9kg)과 일본(9.6kg), 한국(5.0kg) 등에 비교해 낮은 수준이어서 향후 소비증가 여력이 크므로 꾸준한 소비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동 소비량이 장기적으로 서구지역의 소비둔화를 중국 등 신흥개도국(BRIC's)의 성장을 상쇄하며 지속적으로 늘 것으로전망하고 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주요 경제지표의 변화를 살펴보면 유가가 10% 상승 때 국내GDP는 0.12%P 하락, 경상수지는 약 19억달러 감소, 물가는 0.2%P 상승하고 민간소비 및 설비투자는 0.12%P, 0.89%P 각각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유가가 100달러를 유지할 경우에는 잠재성장률을 하회하고 경상수지 적자도 대폭 늘어나 경제에 큰 부담을 줘 특히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1.29%로 수익성 악화가 심화될 수 있다.

유가 상승이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정유는 원재료가 원유이기 때문에 유가 상승의 1차적인 영향을 받는다. 특히 화학, 고무·플라스틱, 섬유업종은 원유 정제품인 나프타를 이용하기 때문에 유가 상승의 2차적인 영향권에 속한다. 그리고 연료 및 전력 등 에너지용으로 석유제품 소비가 많은 비금속광물, 제지, 1차금속, 운송업종은 유가 상승의 3차적인 영향을 받는다.

환율 하락에 따른 영향은 수출비중이 높은 자동차, 조선, 섬유, 전기전자산업의 매출액 감소가 평균치를 상회하며, 화학, 기계, 철강 등도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정유업종은 수입 비중이 높아 매출원가 하락 폭이 더 크게 나타난다.

순외화자산이 많은 조선, 자동차, 의류업종은 환율 하락으로 환차손 발생하나, 철강, 정유 업종은 원재료 수입 비중이 높고 외화단기차입금 비중도 높아 대규모의 환차익이 발생하고 가격 경쟁력 열위에 있는 섬유, 의류, 고무플라스틱업종 등은 환율 변동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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