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파산 및 회생제도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개인파산 및 회생제도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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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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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최정식 법률법인 청송 대표변호사

수년전부터 우리 사회는 경기침체와 실업의 증가로 인해 채무상환능력을 상실한 이른바 파산채무자들이 급증하게 되었고 그 결과 범죄의 증가와 국민경제의 불안의 가중 등 사회 전반에 나쁜 영향을 초래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채무불이행자를 파렴치범으로 간주해 노예로 삼을 수 있었던 로마시대도 있었지만 너무 잔인한 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 후 채권자는 채무자의 협조를 얻어 채권회수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했으며, 더 나아가 일정 비율의 채권자의 동의를 전제로 면책을 허용함으로써 ‘성실하지만 불운한 파산채무자’가 과거로부터 새 출발(new start)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미국은 1898년 파산법 직전까지 일정비율 채권자의 동의를 면책요건으로 함). 오늘날에는 불운한 채무자를 구제하는 차원을 넘어서 파산을 사회의 구조적 책임의 일환으로 간주해 파산자를 구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과거 파산법, 회사정리법, 화의법, 개인채무자회생법을 모두 폐지하고 2006년 4월 1일부터 법인과 개인에게 공동으로 적용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이라 함)을 제정해 실행하고 있다. 파산에는 개인이 자신의 변제능력을 초과해 제품을 구입하거나 금전을 차용한 후 자신의 재산으로 채무변제능력을 상실한 소비자파산이나, 개인사업자가 영업활동을 하다가 채무상환능력을 상실한 영업자파산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개인이 파산을 신청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파산 후 잔존하는 채무에 대한 면책을 받아 경제적인 갱생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산선고를 받으면 공무원이나 변호사 등 일정 직업을 유지할 수 없으며, 또 7년간 관리되는 신용거래정보상 파산자의 기록 때문에 각종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받는다. 따라서 공무원 등 특수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거나 금융거래상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파산신청 대신에 기초생활비를 제외한 소득에서 최대 5년간 매월 일정액을 변제하고 그 나머지 채무는 면제받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

과거에 우리 파산절차는 대부분 기업이 이용해 왔으나 금융위기 이후 개인들이 이용하기 시작해 2002년에 1,335건인 개인파산 신청건수가 2006년에는 126,805건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했으며 그 인가율도 2006년에 98%에 이르렀다. 이처럼 파산신청이 증가한 원인은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파산자나 신용불량자에 대한 사회적인 관용의 분위기가 팽배해짐과 아울러 채무자들의 변제의지가 감소GOT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법제가 경제적인 약자를 구제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GO 왔고 특히 IMF 금융위기 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실업자들의 회생과 재기를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이 자기책임의 결과로 초래한 파산(bankruptcy)을 국가나 사법부가 무한정으로 관용과 아량을 베풀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공익보다는 사익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발생한 한국사회의 병리현상 중 하나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만연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과실이나 고의 때문에 발생한 손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타인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채무자의 이익을 주는 파산 및 면책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도덕불감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동안 우리 사법부는 개인파산자의 어려운 처지를 감안해 지나치게 온정주의적 태도를 취한 결과 파산신청사건의 대부분을 인가해 왔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채무면제법을 제정해 일괄 면책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신용정보회사 직원들이 채권상환의 본래의 업무를 방기한 채 채무불이행자의 명부를 이용해 파산신청사건의 브로커 역할을 해왔고 동시에 개인재산을 은닉한 채 파산과 면책결정을 받아내려는 얌체족이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다행히 최근 법원은 개인파산과 면책에 대한 심사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재량면책의 범위도 축소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국가는 당연히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더욱이 국가는 사회구조와 경기변동 등처럼 개인의 능력 이외 사유로 파산자들이 된 성실한 국민에게 갱생의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동시에 억울하지만 성실한 채무자와 재산을 은닉한 악질 채무자를 구별해 악질 채무자들이 파산면책을 악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해 통합도산법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이익을 비교 형량해 양자를 적절히 보호하는 균형 잡힌 저울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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