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는 죽음, 安樂死에 대하여
품위있는 죽음, 安樂死에 대하여
  • EPJ
  • 승인 2008.07.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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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세 아이를 둔 한 여인이 코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병으로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고, 시력마저 상실하여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법원에 안락사를 허용해달라는 신청을 하였으나 거부당하자 이틀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올해 초 발생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기관지 내시경 치료를 받던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75세의 환자와 그의 가족이 법원에 치료중단 가처분을 신청함과 동시에 존엄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국가의 입법부작위로 말미암아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국은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는데, 네덜란드가 2002. 4.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을 제정 시행했으며, 독일은 소극적 안락사를 ‘죽음에 있어서의 도움’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도움은 환자의 의지에 따라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오리건 주는 1994년과 1997년 각각 주민투표를 거쳐서 미국 최초로 ‘품위있는 죽음에 관한 법(Death with Dignity Act)’을 제정하였다. 또한 1983년 낸시 크루젠 사건에서 연방법원은 사전에 환자가 자신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명백한 의사표시를 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는 치료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가 있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첫째로 연명할 수 있으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積極的 安樂死, 둘째로 소생 가능성이 작은 환자를 방치하여 사망하게 하는 消極的 安樂死, 셋째로 뇌사자처럼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尊嚴死로 분류한다. 국내 의료계는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이는  형법상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안락사 논쟁을 처음 촉발시킨 2004년 ‘보라매 병원 사건’은 의식불명의 뇌출혈 환자를 부인이 병원비의 과중한 부담을 염려한 나머지 남편을 퇴원시켜 숨지게 한 사건으로서, 퇴원시킨 부인은 살인죄, 퇴원에 동의한 의사는 살인방조죄를 선고받았고, 최근 지방법원에서도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아들을 숨지게 한 부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가 있다.

안락사에 대한 논쟁에서, 우선 안락사의 허용을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데, 그 이면에는 인간답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권리도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하는 자율성을 향유할 수 있는 인격자로서의 정체성을 주장할 자기결정권이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무의미한 연명행위를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과 삶의 질의 유지를 위해 자연사에 이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하여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측에서는 환자의 존엄사의 권리 및 자연사를 할 권리는 우리 헌법 해석상 허용되지 아니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자기결정권 등 헌법상 기본권이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근거라는 주장은 자기모순이라고 한다. 위 가처분 사안에 있어서 만일 치료중단 처분이 허용되면 즉시 환자는 사망에 이르러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의료인은 약간이라도 회생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환자의 퇴원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생각건대, 우리 법률 하에서 안락사가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다른 가치, 즉 경제적 가치나 타인의 평안 등을 이유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명이 경시되는 오늘날에 있어서 인간의 생명이 경제적 가치로서 평가되고 범죄에 이용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또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 환자가 치료중단이라는 명시적 의사를 표시한 사실이 없는데도 타인의 의사만으로 안락사가 인정된다면, 타인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환자의 생명이 결정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의료인이나 가족이 떠안아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식물인간을 둔 가족은 모든 가산을 탕진하면서 병원비를 부담하여야 하고, 가족이 병원비를 부담하지 못하면, 병원이 결과적으로 치료비를 부담하여야 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따라서 국가가 직접 관여하고 그 치료비를 보전해주는 등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단지 위법의 잣대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그 해결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의학적으로 소생가능성이 거의 0%이고, 뇌사상태가 일정기간 이상이 경과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존엄사의 허용여부를 국가의 권위 있는 기관(위원회)에서 판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품위 있는 죽음(death with dignity)은 이제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지혜를 발휘하여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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