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없는 에너지공기업 어둠 속 ‘항해’
선장 없는 에너지공기업 어둠 속 ‘항해’
  • 최옥 기자
  • 승인 2008.07.11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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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재공모 태반… 업무공백에 ‘파행경영’

새 정부가 공공기관장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은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기관장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 특히 에너지공기업들 상당수가 재공모 결정이 떨어지면서 하반기 경영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업무공백이 길어져 사실상 ‘파행경영’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한전을 비롯한 전력 에너지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회자되고 있는 최근 최대 이슈를 추적, 이를 진단해 본다.

지난 6월 2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기관장 선임 추진상황’에 따르면 총 294개 공공기관 중 기관장 선임이 완료된 곳은 128개뿐이다.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관장도 36명이나 돼 겨우 43.5%만 정상적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자리가 비어 있는 셈이다.

신임으로 선임된 기관장이 59명이며,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잔여 임기까지 유임된 기관장은 69명에 불과하다.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 CEO 선임은 더욱 오리무중이다. 지경부 산하 5개 주요 공공기관 중 4곳이 기관장 재공모 절차를 밟게 되면서 해당기관의 장기간 업무공백이 불가피해졌다. 한전을 비롯해 석유공사, 가스공사, 전기안전공사 등이 공모 후 후보자를 올렸지만 공공기관운영위원회로부터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7월 4일 현재 지경부 창의혁신과에 따르면, 산하 주요 에너지공기업 기관장 선임 현황은 석유공사, 전기안전공사가 재공모 절차를 밟고 있고, 한전은 4일 이사회를 열어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구성한 후 재공모 일정을 어렵사리 잡았다.

또 석탄공사와 광업진흥공사는 공공위에 후보를 상정하고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난방공사, 에너지관리공단, 광해방지사업단은 기관장 공모를 해 면접까지 마친 후 현재 지경부의 인사검증 단계에 와있다.

한전의 경우, 정부의 결정에 따라 재공모 절차에 들어간 상황으로 지난 7월 4일 이사회를 열고 임원추천회의를 구성하고 사장 선임일정을 확정했다. 한전은 7월 8일 후보자를 모집공고하고 7월 14일 후보자 등록을 마감할 예정이다. 후보 등록이 마감되면 7월 15일 임추위를 다시 열어 면접대상자를 서류심사로 확정하고 17일 후보자면접심사를 거쳐 최종후보자를 3~5배수로 공공위에 추천하면 공공위가 이달 18일부터 31일까지 인사검증을 거쳐 최종 임명권자에게 추천하게 된다.

다시금 재공모 결정이 나는 등의 변수가 없다고 전제해도 빨라야 오는 8월 19일쯤 주주총회를 통해 사장 선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성·능력 등 겸비해도 적임자 아니다?
공공위가 심사를 통해 재공모 통보를 한 기관에 밝힌 사유는 “적임자가 없다”는 것.

애초 한전 사장 공모에는 지원자 19명 중 면접심사를 통해 압축된 5명의 한전 사장 후보가  이원걸 전 한전 사장을 비롯해 정태호 한국동서발전 사장, 곽진업 전 한전 감사, 윤맹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박희갑 전 한국남동발전 사장 등 모두가 전력그룹사 전 임원들이었다.
공모 직전에 기관장으로 있던 인사의 응모를 금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던 데 반해, 현 정부의 기관장 물갈이로 인해 일괄사표를 제출했던 전임 기관장들이 다시 신임 기관장 공모에 도전한 셈이었다.

이에 따라 재공모 통보는 결국 정부가 노무현 정권에서 기관장을 하던 전임 기관장의 재신임을 불허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한전 사장 후보로 추천된 5명 중 4명이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면직 또는 면직 예정자였고, 추천후보 5명이 모두 한전 위주로 편중된 내부인사였다는 점이 이번 결정에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기관장 부재 일상 업무만 진행 중
재공모 절차를 밟게 됨에 따라 한전 내에서는 기관장 부재로 일상적인 업무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업무공백이 올해 내내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또 재공모에 어떤 인사가 응모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번 공모에서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 인사의 응모는 거의 이뤄졌다는 시각에서다.

전력그룹사 한 임원급 관계자는 “지난 공모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인사들이 여럿 지원했지만 내부인사란 이유로 거절당한 셈”이라며 “결국 실력을 겸비했다손 쳐도 전임자면 안 된다는 것이 정부측 입장이라면, 정부가 재공모를 통해 선임한 ‘적임자’가 어떤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인지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가 지목한 사람과 사인이 안 맞았던 것 아니겠냐”며 “재공모를 통해 어떤 인사가 되느냐를 보면 정부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의 신임 사장 재공모 결정이 나자 전력계에선 “어찌됐던 간에 업무공백은 없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전기요금 인상 시기 등에 대한 정부방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유가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한전은 상반기보다 하반기 경영악화가 더 가중될 전망이어서 기관장의 부재가 더욱 크게 와 닿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심지어 한전 내 일부 강경파에서는 “이렇게 선임이 늦어져 업무에 지장이 생길 바에는 예전처럼 청와대에서 지목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전 사장 선임이 지연되면서 발전사 사장단 공모 시기도 덩달아 늦어질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발전사 사장단 중 잔여임기까지 유임키로 확정된 기관장은 남동발전 곽영욱 사장과 서부발전 손동희 사장 등 2명뿐이다. 한수원 등 기타 4개 발전사 사장단은 한전 사장 선임 이후 선임한다는 것이 정부 측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들 사장단의 재신임이나 공모 여부 또한 대주주인 한전의 사장이 선임된 이후 주주총회를 통해 결정될 전망이다.

지경부 내 산하기관 인사담당자는 “발전사 사장단 공모 시기는 모회사인 한전 사장이 선임된 이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발전사의 경우 사장들이 현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으로 업무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측 의견과는 달리, 발전사 내부에서는 사장단 거취에 대한 결정이 늦춰질수록 사업을 추진하는 속도나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민간CEO 출신보단 정치권 인사 왔으면”
한편, 재공모에서는 정부가 지난 공모에 내부출신 인사 지원이 많은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과 관련, 민간기업 CEO 출신이나 정치권 인사의 지원이 많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한전 내부에서도 기왕 낙하산 인사가 올 것이라면 정부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 있는 인사가 신임사장으로 왔으면 하는 눈치다.

전력그룹사 한 관계자는 “민간기업 CEO 출신보다는 정부 측 사람이 오는 게 사업을 추진하는 데 힘이 될 것”이라며 “에너지담당 장·차관급 인사가 신임 사장으로 온다면 전문성 면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고, 정부 측과 소통도 잘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출범 전부터 민간기업 CEO 출신 중용을 밝힌 상황이어서 민간CEO 선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지경부 산하 다른 에너지계 공기업 기관장 선임 상황은 에너지관리공단의 경우, 지난달 23일 면접심사를 통해 김동식 LG디스플레이 상무와 손영목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 이태용 특허청 차장 등 3명을 신임이사장 후보를 지경부에 보고하고, 현재 신임 이사장 선정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한전과 마찬가지로 재공모 결정이 떨어진 한국전기안전공사는 7월 17일까지 서류 접수를 받는 등 재공모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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