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의 순간, 화살에 마음을 실어 보내다
무념무상의 순간, 화살에 마음을 실어 보내다
  • 박재구 기자
  • 승인 2008.06.09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호회] 한수원 영광원자력본부 국궁동호회 ‘봉대정(峰大亭)’

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음을 담고 있다. 사대에 서서 과녁을 집중하며 활시위를 당기는 지극히 짧은 순간, 마음 속 흔들림을 잡기 못했다면 화살은 어김없이 과녁을 벗어나 허공에 의미 없는 떨림만을 남긴 채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만다. 사수가 지닌 고민과 번뇌의 무게를 화살이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활을 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이번 달 동호회 취재 대상은 한수원 영광원자력본부 국궁동호회 ‘봉대정’ 회원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전쟁과 수렵을 위해 활쏘기는 필수요소로 여겨져 왔고, 고구려 시조 ‘주몽’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고대에는 활을 잘 쏘는 것은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선택받은 자’의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시대를 거쳐 오면서 활쏘기는 전쟁과 수렵의 한 방편에서 점차 심신수양의 도구로 자리 잡게 된다. 조선시대 활쏘기는 무인뿐만이 아니라 문인 그리고 일반 백성들도 익히고 즐겨한 무예로 널리 행해지기도 했는데, 일반에게 활쏘기는 사정(射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근대에 접어들어 1909년 7월 15일에 이상필(李相弼), 이용문(李容紋) 등 동호인이 모여 사궁회(射弓會)라는 활쏘기 단체를 조직했다. 이 단체의 조직으로 인해 활쏘기가 민중스포츠로서 보급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 후 스포츠로서의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궁술연구회(朝鮮弓術硏究會)가 발족한 때부터이다.

대한 궁도협회는 8·15해방을 맞은 이듬해 1946년 2월 10일에 조선궁도회(朝鮮弓道會)의 부활로 정식 발족됐다. 그 후 1947년 조선궁도협회로 개칭되었다. 1960년대 접어들어 국제궁도인 양궁(洋弓)이 유입되면서 한국 궁도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83년 대한궁도협회에서 담당하던 양궁이 따로 분리되면서 새로운 단체인 대한양궁협회가 생겼고 이때부터 대한궁도협회는 국궁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처럼 현대로 접어들면서 활쏘기가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자리 잡게 되고, 경기를 위해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계량화된 ‘양궁’이 일반화되면서 전통적인 ‘국궁’은 점차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소외받고 있는 실정이다.

활쏘기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민족답게 ‘양궁’에서 세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어느 사이 ‘양궁’이 활의 대명사가 되어 대중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이 전통적인 ‘국궁’은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국궁동호회 취재에 나선 나 역시 직접 활(국궁) 쏘는 모습을 본 것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말이다.

‘국궁’ 심신수양의 대상으로 다시 자리 잡다
‘국궁’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은 영광원자력본부 국궁동호회 ‘봉대정’ 회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외로 말끔히 사라졌다. ‘국궁’을 접하는 회원들의 마음 때문이다.

국궁동호회인 ‘봉대정’ 회원들에게 활쏘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운동이기에 앞서 철저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수련의 과정이다. 회원들은 심신수양의 도구로 활쏘기만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는 ‘궁도의 목적은 활쏘기를 통해 모든 인간사에 대한 도(道)를 함께 닦는 데 있으므로 궁도를 연마한 사람은 사심 없이 활을 당겨 심기(心氣)를 집중하고, 활을 쏜다는 의식을 버리고 발사한다’는 궁도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척이나 오랜만에-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가까이서 활 쏘는 모습을 보는 것에 조금은 설레고 기대가 된다. 어린 시절 강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궁터를 본 이후 실제로 궁터에 와 보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궁동호회 정철영 회장(2발전소 운영실 발전부장)과 최병선 사두, 그리고 허중기 총무와 함께 발전소 외곽에 위치한 궁터를 찾았다.

최병선 사두가 취재를 위해 활을 쏠 때 입는 정식 복장을 차려입는 배려와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국궁’ 대회에서는 옷과 신발 모두 흰색으로 갖춰야 한다고 한다. 정결함과 단아함이 묻어난다.

사대에서 과녁까지의 사정거리는 145미터, 과녁의 크기는 가로 6자 6치, 세로 8자 8치(1자는 30.303㎝, 1자는 1치의 10배)이다. 실제 과녁의 크기는 2.5미터의 크기지만 사대에서 바라본 과녁은 까마득하게 멀리 느껴진다.

국궁 정식경기에서는 5∼7명이 1조가 되어 차례를 정하고 과녁을 향해 1m 간격으로 나란히 서서 심판의 발시(發矢) 신호에 따라 오른쪽부터 차례로 살 하나씩을 쏘아 5발을 끝낸 다음, 적중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개인 및 단체의 순위를 결정한다. 위와 같은 방법을 3차례 반복하는 것을 3순(巡)이라고 하며, 주최 측의 결정에 따라 3순(3회 15발)·5순(5회 25발)으로 경기할 수 있다.

최병선 사두가 활 쏘는 시범을 보였다. 국궁은 양궁과는 달리 오로지 사수의 경험과 감각만으로 바람이 세기, 방향 등을 고려해 활을 쏘아야 하기 때문에 과녁에 적중시키는 것이 맘처럼 쉽지가 않다고 한다.

국궁은 양궁처럼 한 과녁에 점수가 달리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과녁 안에만 들어가면 명중으로 1점이 주어지며, 국궁에서 쓰이는 화살의 촉은 뭉툭하게 만들어져 고무판으로 된 과녁에 맞으면 ‘탕’하는 소리로 명중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 사두가 1순(5발)의 화살을 쏘아보였다. 과녁을 조준하는 잠시의 정적을 깨고 핑하는 소리와 함께 시위를 떠난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미처 시선이 따라가기도 전에 탕하는 소리로 과녁에 적중했음을 알린다.

지극히 정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순간적인 과정이지만 알 수 없는 강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수가 뿜어내는 기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전국대회 단체전 입상 목표, 전국대회 개최 계획
영광원자력본부 국궁동호회 ‘봉대정’은 93년 8월 결성됐으며 현재 회원은 20여명이다. 회원들의 심신단련과 친목 도모, 그리고 국궁 활동을 통한 원자력의 홍보를 목적으로 결성된 ‘봉대정’은 2년 전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수원의 4개 원자력본부 중에서 궁터가 있는 곳은 영광원자력본부가 유일하다.

‘봉대정’은 현재 정철영 발전부장(2발전소 운영실)이 작년부터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최병선 사두와 유관식 사범, 허중기 총무가 동호회를 이끌고 있다. 사두(射頭)는 사정의 대표로서 사정을 통괄하고, 교장(敎長) 또는 사범(師範)은 사원(射員)의 사술(射術)과 사풍(射風), 궁시에 관한 지도를 하며, 행수(行首)는 한량(閑良)을 통활 단속하며 사정의 총무직을 맡는다.

‘봉대정’의 사두를 맡고 있는 최병선 사두는 98년부터 국궁을 시작해 현재 4단이다. 4단은 45발을 쏘는 시험에서 30발을 명중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실력자이다. 또한 5단부터 ‘명궁’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니 ‘명궁’이라 불릴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국궁은 정적인 운동이면서도 자세교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최 사두는 “사대에서는 무상무념이 되어야 하고 잠깐의 상념이 생겨도 어김없이 활은 과녁을 벗어난다”며 “활쏘기는 자신과의 싸움”임을 강조했다.

또 우연히 궁터에 갔다가 활 쏘는 모습에 매료돼 국궁동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는 허중기 총무는 화살이 과녁에 명중할 때의 쾌감이 무척이나 좋다고 국궁의 매력을 설명했다.

‘봉대정’의 올해 목표는 전국대회 단체전 입상이다. 매년 60여 차례 열리는 전국대회에서 ‘봉대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단체전 입상을 해본 적이 없다. 현재 ‘봉대정’에서는 1~2개 팀이 단체전 참여가 가능한 수준이다.

아울러 정철영 회장은 ‘봉대정’에서 1~2년 안에 전국대회를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대회는 전국에서 1,000여명의 궁사가 3박 4일간 경기를 하는데, 동호회는 물론 원자력을 홍보하는 데도 한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국대회 개최를 위해서는 시설 개선이 우선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위해서는 본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궁사들이 ‘봉대정’에 모여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활쏘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예와 덕의 수련 과정
궁술은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맞지를 않고 안 맞으면 자신을 책하게 되는 까닭으로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활쏘기를 군자지도(君子之道)로 여겨 심신(心身)의 연마에 좋은 벗으로 삼아 왔고, 활쏘기는 예(禮)와 덕(德)을 행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기에 활쏘기에는 정간배례, 초시례, 팔찌동, 동진동퇴, 궁도 9계훈 등의 예법이 있었다.

그중 ‘궁도 9계훈’을 소개하면 ▲인애덕행(仁愛德行) 사랑과 덕으로 본을 보인다 ▲성실겸손(誠實謙遜) 매사에 성실하고 겸손하게 행한다 ▲자중절조(自重節操) 행실을 신중히 하고 절조를 굳게 지킨다 ▲예의엄수(禮儀嚴守) 예의 범절을 엄격하게 지킨다 ▲염직과감(廉直果敢) 청렴겸직하고 용감하게 행한다 ▲습사무언(習射無言) 활을 쏠 때는 침묵을 지킨다 ▲정심정기(正心正己)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한다 ▲불원승자(不怨勝者)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막만타궁(莫彎他弓) 타인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예와 덕을 중시하는 활쏘기인 국궁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심신을 다스리는 수련의 과정으로서 물질 중심의 시대에 자아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화살을 과녁에 맞히려 하지 말고 화살에 마음을 실어 보내라.’ 사대에서 누군가가 들려준 이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서 울리고 있는 이유도 활쏘기의 정신이 올바른 삶의 정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