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악몽 같은 열흘을 이야기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악몽 같은 열흘을 이야기하다
  • 신선경 기자
  • 승인 2008.05.13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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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화려한 휴가>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 날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날 영문도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를 위해 총칼을 들어야만 했던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다만 그들이 살던 곳이 광주였을 뿐. 영화 <화려한 휴가>는 ‘사건’이 아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들의 치열했던 열흘 간을 기억해내는 영화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30여년이 지난 현재, <화려한 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져간 이야기이며 어쩌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꺼냈다. 치열했던 광주의 그날을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화려한 휴가>는 가슴 아픈 역사와 그 속의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해내려 했다. 택시운전사, 간호사, 고등학생, 선생님, 신부님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광주의 시민들이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며 겪는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1980년 5월의 광주, 그리고 그 속에 살았던 나와 아주 비슷한 평범한 그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처절하고 치열한 투쟁.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고 콧등이 찡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을 재조명하다
지금까지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들은 많았다. 1994년 <꽃잎>은 그날의 아픔으로 인한 후유증을 그린 영화이고, 1999년 <박하사탕>은 5·18이 주인공 인생사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모래시계> 역시 5·18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영화 <화려한 휴가> 또한 5·18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5·18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5월 18일 0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광주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계엄군에 맞서는 열흘간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어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더하다.

도청에서 무장한 계엄군과 맞서는 시민들을 위해 시내 가두방송을 한 용감한 여자, 아버지의 주검을 붙들고 목 놓아 울었던 어린 아이, 억울하게 부상당한 시민을 구하고 이에 격분해 시위대에 가담한 학생 등 열흘 만에 존재도 이름도 사라져 버린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기 위해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각각의 캐릭터는 그들을 반영하고 있다.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그날과 그날을 살아간 사람들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아 감동을 전하고 있으며, 시민군 한 명 한 명의 사연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시 자리 잡게 됐다.

우리가 숨 쉬는 자유와 민주, 이런 것들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5·18이란 과정을 거친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던 김지훈 감독은 5·18이란 실화를 바탕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광주를 지켜준, 더 나아가 자유를 지켜준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사람냄새 나는 영화를 완성했다.

5월 18일부터 열흘 간 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서는 광주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에 귀 기울인 <화려한 휴가>는 5·18이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현재 모습을 뒤돌아보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각난 그날의 기억을 사실적으로 되살리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인가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면 얼마나 완벽하게 그 날을 표현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재현하고자 하는 그 시대상을 세심한 부분까지 완벽히 반영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만큼 모든 스텝이 가장 주안점을 둔 요소는 바로 깊이와 밀도였다.

이에 <화려한 휴가> 제작진은 당시 국내외 언론 보도 기사와 그동안 방송된 관련 다큐멘터리를 모두 섭렵하는 등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토대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1980년 실제와 같은 세트를 제작했다. 또한 당시 그 일을 겪었던 생존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1980년의 조각을 하나 둘씩 맞춰가며 그 날을 완성했다.

30여년 전의 오늘을 완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년을 걸친 연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1980년 5월의 열흘이라는 시간을 창조해냈으며, 갑작스런 사건 속에서 오로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무력에 투쟁했던 평범한 시민군의 이야기를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완성해냈다.

평생 잊지 못할 열흘간의 기억을 정화하다
1980년 5월, 광주.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히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택시기사 민우(김상경 분)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눈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그들은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결말을 알 수 없는 열흘 간의 사투를 시작한다.

배우들 열연으로 더 견고하고 노련해진 작품
5·18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는 어느 액션영화 못지않은 장면들이 많았다. 투입된 탄약과 폭발물의 양도 많았고 탱크, 장갑차 등을 이용한 총격전 장면 또한 압권이다. 이에 배우들 역시 위험천만한 장면을 촬영할 때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프로정신을 보이며, 그날의 생생함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위험한 총격 장면과 몸싸움 장면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과감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을 통해 <화려한 휴가>는 더욱 견고해지고 노련해졌다.

또한 <화려한 휴가>의 배우들은 1980년 당시의 광주 시민이 되어 감정 몰입에 충실했다. ‘강민우’ 역의 김상경은 촬영이 없는 날에도 늘 촬영장을 지키며 5개월 동안 ‘강민우’의 삶을 살았고, 여자 주인공인 이요원 역시 당시 시내 가두방송을 한 ‘전옥주’를 모티브로 창조된 인물인 ‘박신애’를 완벽히 연기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남녀노소 불문하고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위해 계엄군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연기를 하는 등 열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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