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다시 봄, 청송의 등불은 봄처럼 따뜻하다
봄 그리고 다시 봄, 청송의 등불은 봄처럼 따뜻하다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8.05.1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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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인] 서부발전 청송양수발전처 김동명 발전부장

청송의 봄은 자유다. 바람은 자유롭게 불어와 세례 하듯 세속에서 묻은 티끌을 씻어준다. 오랜 여정 아니지만 가는 길은 아주 멀다. 가 봐야 우리 땅 고작 천리길인데 구비 넘는 산과 강의 길이와 샛길 다 재 볼 수 있다면 그 길이는 청송양수발전소 땜 안의 물이 한 100년의 밤과 낮을 오르고 내리며 불을 밝혀내야 할 만큼 되지 않겠나.

언젠가 능금꽃 그늘 아래 누워 잠들어 보고 싶은 적 있었는가. 영천 지나 청송으로 길을 잡는데 오래된 다리 지나자 과원 가득 능금꽃 하얗게 피었다. 명징하게 떠오르지 않는 영화 한 장면, 그 영상 청송 가는 길인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찍은 청송 주산지 우듬지의 버드나무였는지 단상을 떠올려 보는 동안 머리 뒤쪽으로 나뭇가지들 하나씩 쓰러진다.
 
나머지 회상은 들판의 풍경에 묻어둔다. 들에 웬 나비일까. 매화꽃 사라진 기슭에 나비처럼 움직이는 꽃잎들, 청송의 봄 색깔은 언젠가 상상했던 시골 소녀의 머리칼에 묻은 하얀 능금꽃만 같다.

한국서부발전(주) 청송양수발전소 발전부 김동명 부장을 만나러 가는 길, 출장길이 겹쳐 부산에서 일을 본 후 경주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접어들었다. 봄날이라 날 좋고 바람 선선했지만 청송터미널 부근에 오자 날이 어두워 왔다.

그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있던 김동명 부장이 마중을 나와 줘서 자주 와보지 않은 청송이 조금은 낯설지 않게 됐다. 먼 길을 달려온 손님을 반갑게 맞으며 혹시 배는 고프지 않을까 하고 염려해주는 마음에서 그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일 다시 만나고 이 밤은 청송에서 묵기로 한다.

청송양수발전소의 상·하부댐 주변에는 야생화동산, 전망대, 홍보관 등의 테마공원이 조성돼 이곳에서 지척인 주왕산 국립공원, 주왕산 절골, 주산지를 묶어 돌아 볼 수 있는 패키지 관광코스로도 볼만한 곳이다.

구암지맥의 형상인 노래산 정상 부근의 배나무골에 펼쳐진 노래호가 관광 청송을 부활시켰다. 해발 795.7m높이의 노래산은 구암지맥상 구암산(807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명산이다.

노래산 정상의 상부댐으로 가는 길은 등성을 따라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길 따라 장미길, 등나무길 등 갖가지 나무와 야생화로 단장해 꽃피는 지금 봄의 꽃길을 이루고 있다. 해발 600m를 오르는 길에는 길목마다 봄 나무의 향기가 가득하다. 힘겹게 정상에 오르면 노래호가 반긴다. 호반길, 야생화와 수목들이 테마언덕을 이룬다.

노래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눈 아래 하부 댐인 청송호가 보이고 우측으로 청송 시가지와 주왕산 그리고 멀리 주산지도 아련히 보인다. 상부댐인 노래호 내를 안전상 출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부댐인 노래호를 둘러보고 내려오면 발전소 주변에 잘 가꾸어진 야생화 꽃밭도 볼만하고 조금 내려오면 하부댐인 청송호반이다. 하부댐인 청송호는 상부댐보다 규모도 크고 편의시설과 볼거리가 많아 가족 테마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호반을 따라 휴식 공간도 마련돼 있고 호수 안에는 모형 오리를 띄워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자고 난 아침, 잠을 깨자 호숫가에 번진 안개가 창문 앞까지 와 있다. 일찍 김동명 부장이 일러준 다슬기 해장국으로 조식을 해결하고 발전소 사무실을 찾았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김 부장에게 고향은 마음의 정서를 키우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 기억된다. 금년에 모친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제 고향에 아무도 없지만 향수의 정이 남아 집과 세간을 그냥 두고 종종 둘러볼 작정이라고 한다.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모두 학생회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김 부장은 지금도 그 동창모임에 의무감을 갖고 남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골의 고향’ 그것은 추억의 발산이며 삶에 있어 마음의 풍요와 정서를 안겨주는 본성과도 같은 느낌인가보다. 

초·중학교 시절에 장교의 꿈을 갖고 있었던 그는 평소의 생활태도에서 절도가 있고 장래에 대한 보장도 확실하며 당시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군인들이었으므로 동경의 대상이었고 부모님도 그 길을 원했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그의 희망은 부모님 의견 속에 묻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게 됐고, 꿈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던 고교 3년은 그렇게 쉽게 지나갔다. 졸업을 한 직후 잠시 백수 노릇을 거치고서야 그 때 공부를 더 해서 장교의 꿈 아니면 국문학자의 길을 갔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후 한전에 취직이 되면서 김 부장은 그동안 한길을 걸어왔다. 

무조건 취직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백수를 하지 않아야 했던 김 부장에게 1977년 당시 공고 갓 졸업자에게는 공기업의 입사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공고에서는 기업체 실습을 마친 후 채용 절차를 거쳤지만 그는 실습을 마다하고 공채시험을 위해 조금 더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다행이 국영기업인 철강회사(당시 포항제철)와 한국전력 두 회사에서 합격이 됐다. 일단 제철회사에서 연수교육을 받았는데 내키지 않는 데가 있어 한국전력으로 옮기면서 여의치 않으면 군대에 갈까도 생각했었지만 김 부장은 열심히 하면 승진의 기회가 공평히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평생직장으로 삼게 됐다. 그 당시 한전의 급여는 꽤 높은 편이었다.


전기의 품질 높이는 일에 자부심 느껴
김동명 부장은 청송발전처의 발전부장이다. 청송은 양수발전소로써 그 원리는 전력의 사용이 적은 심야 또는 휴일의 전력을 이용하며, 하부저수지의 물을 상부저수지에 끌어올려 저장한 후 전력사용이 많은 시간 때와 전력계통 사고 시 저장돼 있는 물을 하부저수지로 방류하여 발전하는 수력발전 양식의 하나이다.

청송양수발전소의 상부댐(저수용량 712만톤)은 노래산(795) 꼭대기에, 하부댐(저수용량 1,020만톤)은 청송군 안덕면 노래리에 만들어 두 댐은 1,863m의 방수로 터널로 이어져 낮 시간대에는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퍼 올린 뒤 밤 시간대에 345m의 낙차를 이용해 발전(설비용량 60만 kW)하는 양수발전소이다.

“전기의 품질을 높이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양수 발전소는 24시간 직원이 교대로 발전업무를 담당하게 되는데 저는 이 업무의 총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발전분야가 24시간 업무이므로 항상 비상 휴대폰이 대기 중입니다. 심야에 울리면 그 조짐이 불안합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김 부장은 1977년 한국전력 입사 후 처음 영동화력의 발전부와 기계부에서 근무했고 1992년 과장승격 후에는 서천화력 발전부와 기계부에서 근무했다.

미국 ABB사에서 보일러 시운전 및 정비 연수교육을 받게 된 것은 1995년도의 일이었는데 이때의 6개월 간이 김 부장에게는 영어능력을 키우게 된 것은 물론 업무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태안화력 3,4호기 시운전(‘95~’00)참여와 태안화력 5,6호기 시운전(‘00~’02) 참여를 거치는 동안 2001년 발전회사로 분리됐고 그 후에는 태안화력 5,6호기 시운전 정비/정상운전 정비(‘02~’05)업무를 수행했다.

2004년도에는 발전회사 최초의 국가품질명장을 수상하며 부장으로 승진(‘05)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2006년)하기도 했으며 2007년도부터 현재까지 청송발전처 발전부에 근무하고 있다.

발전소의 운전, 발전운용, 공무 및 정비. 설계. 감독 등의 일은 발전소의 전형적인 업무인데 김 부장은 이러한 일들을 두루 겪으면서 베테랑으로서의 과정을 걸어왔다. 그의 최대의 경쟁력은 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후, 발전소 건설완료 직후 이뤄지는 시운전 분야이다.

시운전관련 해외 연수교육을 포함한 태안화력 3~6호기의 모든 시운전과 공정을 주도한 업무분야에서 약 8년간 수행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전소 터빈, 보일러 성능시험의 계산과 각종 시험도 정확히 숙지했고 시운전 정비 분야도 많이 터득할 수 있었다.

“제게는 그 기간 동안 익힌 노하우를 통해 추후 적절한 분야의 해외사업이 있다면 영어와 일본어도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 적응하고 실행하는 데 자신이 있습니다.”

수력발전도 있는 발전사이기 때문에 현재 청송이 규모는 작지만 양수발전소의 경험을 쌓으며 나름대로 막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김 부장은 오지이고 자식교육 문제로 주말부부로 생활을 하지만 자연경관, 지역주민 그리고 지역문화에 어울려 보람된 회사 일을 하고 있다.

화목한 직장생활의 원천은 가족사랑
그 옛적 김동명 부장의 집안은 60대년 초반 부친이 공직에서 실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농사에 적응이 안 돼 힘든 생활을 했지만 자상했고 자녀의 진학에 헌신적이었다.

“우리 남매는 3남 2년인데 누구도 때리고 맞아 본적이 없이 서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큰형님은 동생들 교육 땜에 대학 중퇴를 택해 취직했고, 이후 대전서 누나의 취직으로 차남이 고교 수업을 마치고 그리고 강릉서 본인의 취직으로 여동생의 고교 수업을 마치는 등의 시스템으로 서로 보완하고 돈과 공부를 맞춰가며 청소년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도 아주 친밀감이 있습니다. 다들 부유하지는 않지만 뜻있게 살고 있으며 늘 건강하기만을 바랍니다.”

김 부장은 현재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슬하에 1녀 1남을 두고 있다. 아이들의 대학 진로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아이들 의사를 존중해주고 있다. 큰 아이가 재수를 택했는데  자식의 고집을 부모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는 그는 다만 좋아서 하는 공부인지라 건강만 유지해 준다면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며 밑으로 남자 아이도 재수할까봐 방에 ‘재수 없는 그림(?)’을 걸어 놓았다며 껄껄 웃는다.

“절대로 돈 많이 벌라는 방향의 말은 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협력하고 돕는 그런 분야에서 아이들이 일했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 가훈은 ‘모나지 않고 둥글게’ 입니다. 그리고 처는 불교를 믿고 있으며, 저는 불교 성향입니다. 절을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지만 지나다 있으면 합장을 슬쩍합니다. 왜냐하면 처가 본인의 법명을 ‘법일’이라고 올렸답니다.”

아이들이 사회의 선량한 일원으로 모나지 않고 각박하게 살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는 잘되면 좋겠지만 사회의 기준에 떨어져 의미 없는 생활이 되지 않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윤상철 청송발전처장의 교육지론인 ‘전력을 생산하는 직장의 보람’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김 부장은 전기가 이 세대에 꼭 필요한 것이고 세상에 광명을 주고 산업의 원동력이며 오늘을 만든 것이라며 이렇게 전기를 생산하는 직장에 근무하게 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누군가 직장을 물으면 일단 ‘전기회사’라 하고 얘기의 각론으로 들어갑니다. 그 정도 전기에 애착을 갖는 만큼 보람도 있습니다. 남에게 직접적으로 크게 이롭게 하는 직장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모습에서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이 느낄 수 있다.  

또한 과거 태안화력 4개호기를 하나씩 준공하면서 단기간의 집중적인 업무인 시운전을 마치고 계통병입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할 때 건설 멤버들과 환호성을 지르며 그 동안의 고생을 다 잊을 만큼 기쁨에 휩싸이던 감회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근무지가 처음 배치된 강릉의 영동화력이라고 말하는 김 부장. 돈벌이를 시작하고 야간대학에 다니며 여동생의 여고졸업을 마치도록 했고 강릉 처와 결혼, 두 아이의 출생 및 과장 승격 등등의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치는 그곳에서 그의 인생은 시작됐고 많은 동료들과 아직도 인연을 맺고 있다.

한번은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할 때 직원이 사망하는 일이 생겼는데 이는 김 부장이 과장 또는 부장으로 일했던 그곳의 교대근무 부서는 유난이 직원이 많았다. 따라서 아주 어려운 상황의 일도 확률적으로 많이 발생할 수 있었다. 

“원인은 둘째 치고 일단 그 부모님에게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화로 전달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아 전할 말을 외워도 또 잊어버리고 이렇게 하기를 수십 번 해야 했던 그 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세상에 또 없을 겁니다. 그냥 내가 어디 좀 다치는 게 낫다고나 할까요.”

또한 직원 교통사고 사망인데 다시 연락을 책임지고 담당해야 했을 때의 그 죽을 맛이란, 해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병원서 일단 영안실로 옮기려면 시신의 얼굴을 확인해 줘야 하는데 동료와 상사는 다들 겁에 질려있고. “한 번 상상해보세요 교통사고 사망 확인은 좀 그렇잖습니까? 그러나 시신확인이 부모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보다는 백배나 쉽습니다.”

그리고 시운전 성능시험 시 폭발 사고, 상사의 끈질긴 결재 지연과 마찰, 과도한 시간외 근무, 업무 스트레스 등등  어려웠던 점은 많았지만 이런 일들은 이미 얘기했던 직원 사망을 연관시키면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김 부장은 말한다.

한번은 직원인데 기질이 좀 막무가내인 친구가 있었다. 특히 새로운 발전소 건설이 시작되면 대거 인사이동이 발전소 본부 내에서 이뤄지는데 모든 부서에서 그 직원이 오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직원서 상사까지 총 동원해서 그 직원을 김 부장이 속한 부서에 보내는 과정에서 싸움도 하고 최고 상사도 핏대까지 세우며 떠 넘겨 결국은 그의 소속으로 옮겨왔는데 며칠 후 그 최고 상사가 다시 김 부장이 있는 부서의 책임자로 발령 나게 됐다. “이것은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메랑 효과도 있다는 것을…”

또 한 번은 김 부장이 과장 때 발전 교대직원 한 사람이 노름 때문에 무단결근을 하고 있었다. 부인에게 문의해보니 죽지는 않았고 어디서 노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보고 후 휴가 3일을 얻어 대근시키고 찾아 나섰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부장에게 4일 간의 추가 연장을 얻어 찾아보려 했지만 허사였고, 최종 처장께 보고했는데 그 때 연락이 됐다. 하지만 창피해서 그 직원은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시골에서 노름꾼은 보았지만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본다는 것이 김 부장에게는 당시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평소의 생각에 ‘모나지 않고 둥글게’라는 표현을 가끔 씁니다. 가훈도 되지만 아주 평범한 이 말을 저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 타투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무언가 모가 나서 자기 입장만 생각한 탓입니다. 이러한 것은 원형 즉, 둥근 공 둥근 지구의 순리대로 움직여 주면 다 풀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라면 박력이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박력과 둥글음은 차원이 상이하다. 둥근 마음은 기본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고 박력은 그러한 토대에서 추진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둥근 마음은 훌륭한 교육으로 만들어지겠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그래서 직장들의 삶에서는 사회일원임을 서로 느끼고 교환 또는 보완할 수 있는 서클 활동, 건실한 대화가 필요하다.

“자기의 논리가 어떻든 서클 하나 없는 직원이라면 생각을 바꾸어 봄이 어떨까요. 좋아서 드는 서클도 있지만 배우려고 하는 서클도 많습니다. 뛰어들어 같이 느끼고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우쳐 가는 거지요.” 

발전사 최초로 국가 품질명장으로 선정돼
김동명 부장은 평소 체력관리는 철저히 하고 있는 편이다. 한 해의 한계체중을 목표로 두고 넘지 않게 항상 조정하고 있다. 아침에는 30분 산보코스를 돌며 체조를 하고, 점심때면 인근을 등산하면서 간단한 악기 연습도 한다.

회사 주변이 자연이 준 극치라 생각하고 몸도 기대어 즐기고 있다. 체중이 늘어났다싶으면 등산의 강도를 키운다. 그는 5월에 작년과 마찬가지로 지리산 30km 극기산행이 계획돼 있다.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도 짓고 요리를 하곤 하는데 이게 다 스스로 몸을 챙기려는 그의 건강법이다.

김동명 부장의 취미는 바둑이다. 중학교 때 부친이 이장이라 면의 산업계장과 종종 두었고 잘 둔다고 칭찬도 받았는데 5급 정도였다. 지금은 인터넷 바둑으로 4단인데 밤을 샐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더러는 취미지만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김 부장은 남 앞에서 보여줄 만한 실력의 클래식 기타 연주가 특기다. 그 외에 리코더, 오카리나, 하모니카, 그리고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다.

“언젠가 여러 악기로 약 1시간 정도 연주의 동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노래는 ‘미’ 이상이 올라가지 않아 조금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술 마시고 노래하면 미, 파까지 올라가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고 남들과 웃고 즐기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김동명 부장은 국가가 심사해 선정하는 품질명장을 발전사 최초로 수상했다. 국가 품질명장은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품질향상을 위해 분임조, 제안활동 등 품질경영 활동에 헌신한 공로로 국가가 심사해 수상하고 있다.

이러한 품질명장을 2004년 발전회사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서부발전의 김 부장이 수상한 것이다. 김 부장은 이에 대해 “이는 앞으로 더 귀감이 되라는 뜻이고 보다 자신을 다듬는데 활용토록 노력하고 있으며 후배들에게의 선도적 역할을 위해 꾸준히 지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더욱 결의를 다졌다.

새로 입사한 후배들에 대해 그는 첫째, 매사 공부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갖도록 주문한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맞춰 외국어는 능통하도록 하고 여러 가지 예를 들며 설명해 주기도 한다.

둘째, 조직일원으로서의 자기위치를 찾아야 한다며 조화와 협력을 강조한다. “예절도 알려주지만 때로는 술에 취해 이성을 잃는 허약한 정신자세가 되지 않도록 하며, 9명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1명의 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분위기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김동명 부장은 연초에 부서 직원 개개인의 일 년 계획을 세우고 직접 개별적으로 토론한 바 있다. 자신의 계획도 물론 동시에 보여줬다. 회사와 개인의 혼합된 계획으로 서로가 합의해 일부 궤도와 목표 수정도 하며 조율했다.

“이 경우 신입사원의 목표 수립에 대해 특별히 배려했지만 개인적 목표가 너무나도 큽니다. 세부실천 일정을 토론하면서 목표를 조금은 낮추기도 했지만 신입사원의 큰 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그의 꿈이 꼭 이뤄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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