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도금을 지급받은 매도인의 이중매도 위법성
부동산 중도금을 지급받은 매도인의 이중매도 위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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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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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파워] A가 13억에 부동산을 B에게 매도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각각 지급받았다. A는 잔금 지급기일이 지날 때까지 임차인으로부터 부동산을 반환받지 못해 잔금 지급시기에 부동산을 B에게 인도하지 못했고, B는 인도 유예기간 동안 예상수익 상당의 돈을 잔금에서 공제하는 조건을 A가 수용하지 않으면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후 A는 부동산을 C에게 15억원에 매도하고 이전등기를 했다. 이 같은 이중매도인의 배임죄 성립여부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을 통해 배임죄를 인정하고 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한다. 죄의 주체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신임관계에서 타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란 처리하는 사무의 내용이나 성질에 비춰 법률의 규정·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해 본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 이유에 대해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우리나라에서 개개인이 보유하는 재산가치의 대부분을 부동산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부동산거래가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는 매우 크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중도금이 지급된 후에는 계약이 취소 또는 해제되지 않는 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가 있다.

즉 매수인은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것이란 신뢰에 기초해 중도금을 지급하고, 매도인도 그러한 신뢰를 인식하면서 중도금을 받는다. 따라서 중도금이 지급된 후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신임관계가 이뤄지고,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기 전에 고의로 제3자에게 목적부동산을 처분하는 행위는 매매계약상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행위로써 임무위배행위에 해당 한다.

그러나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는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대법관 5명의 소수의견에 따르면 부동산 이중매매의 비난 가능성에 치중한 나머지 등기협력의무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라는 작위적 개념을 이용해 자기의 사무에 불과한 소유권이전등기 의무를 타인의 사무로 변질시켜 형사법상 범죄가 되지 않는 채무불이행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민사상 채무불이행의 해결을 위해 국가형벌권으로 개입시키고 있으며,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형사법의 유추 또는 확장해석을 통해 채무불이행을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즉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의 소유권이전 의무나 매수인의 대금지급 의무는 신임관계에 기초해 상대방에게 위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자기의 사무이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개개인 재산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중매매의 비난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런 현실을 중시해 대법원은 중도금을 지급받은 매도인은 매수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으며, 만일 그가 제3자에게 부동산을 매도한다면 형법상 배임죄가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사적 자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인 간의 경제활동 영역에서 민사적 수단에 의한 합리적 분쟁해결을 도모하기 보다는 형벌법규를 적용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의 재산권 보호가 중요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의 근간을 허물면서 국민의 인권보호를 소홀히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하여간 부동산매매에서 중도금을 받은 후에 설사 제3자가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해서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면 배임죄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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