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슴 벅찬 감동, <말아톤>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슴 벅찬 감동, <말아톤>
  • 신선경 기자
  • 승인 2008.04.10 0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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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말아톤>

<말아톤>은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가능하게하고, 그 힘겨운 레이스를 끝까지 달리게 하는 어떤 ‘의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말아톤>에서의 ‘마라톤’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에서 각자가 이루고자 하는 그 어떤 목표이자 의지 표현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5살 지능의 자폐아, 42.195km의 마라톤, 극한의 고통과 인내,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헌신적인 모성애, 영화 <말아톤>을 설명하는 이 말들은 모두 사실이긴 하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다.

영화 <말아톤>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초원이 마라톤을 완주해내는 순간이 아니라 마라톤의 스타트 라인에 선 초원이 말리는 엄마의 손을 놓고 스스로의 의지로 달려 나가는 순간이다. 한 번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적 없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끊임없이 회의하지만 아들은 결국 자신의 의지로 홀로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지막 마라톤 레이스 장면에서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햇살 속을 달리는 초원의 모습.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될 그 모습을 통해 관객은 부모의 강요나 그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의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목격할 것이다.

상투적인 감동이나 강요된 깨달음이 아닌 영화 속의 인물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깊은 공감을 통해 선사받는 기분 좋은 감동, 그것이 <말아톤>을 다른 휴먼 드라마들과 차별되게 하는 가장 큰 미덕이다. 초원의 행복한 미소는 관객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삶에 지쳐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달리게끔 만드는 에너지가 되어준다.

희생보다 아름다운 자립의 순간 
<말아톤> 속의 엄마 경숙. 그녀는 이미 자신을 위한 삶은 포기한지 오래다. 자폐증 아들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 독하고 극성스러운 여자라는 주변의 따가운 눈길, 신경써주지 못한 사이 자꾸만 비뚤어지는 둘째 아들, 주위의 모든 것이 그녀를 힘들게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자폐아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그녀는 희생을 감수하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집착으로까지 보이는 그녀의 행동들은 우리가 짐이라고 느꼈었던 우리들 부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엄마는 수십 년 간 잡고 있었던 아들의 손을 마지막 순간까지 선뜻 놓지 못하지만 아들은 끝내 그 손을 놓고 달려 나간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그렇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하며 우리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제 스스로 온전히 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또한 그토록 진저리쳐지고, 족쇄로만 느껴졌던 부모란 존재가 없었다면 그러한 순간은 오지 못했을 것임을.

바로 이 지점에서 <말아톤>은 ‘가족’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 차별된다. 기존의 한국 영화들은 의도적으로 설정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의 부모의 무조건적인 희생, 그리고 자식의 뒤늦은 깨달음을 통해 관객의 죄의식을 자극하고 눈물을 자아내는 상투성에 그치곤 했다. 하지만 <말아톤>은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일깨우는 동시에, 희생보다 더 아름다운 자립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 모든 자식들이 꿈꾸는 자립의 순간, 그 순간 느끼는 희열과 감동. 그렇게 <말아톤>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유쾌하고 기분 좋은 감동을 선사하는 가족 영화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겉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다른 것 하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초원. 어느 날 초원이는 자폐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고 엄마 경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에만큼은 정상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달릴 때만큼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 희망을 갖고 꾸준히 훈련시킨다.

시간이 흘러 20살 청년이 된 초원. 하지만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어대고, 동생에겐 마치 선생님 대하듯 깍듯이 존댓말을 쓰고,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특유의 막춤을 선보이기 일쑤이니 어딜 가든 초원이가 있는 곳은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다. 하는 짓이나 말투는 영락없는 5살 어린아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달리기 실력만큼은 여전히 최고인 초원. 경숙은 자신의 목표를 ‘초원의 마라톤 서브쓰리 달성’으로 정하고 아들의 훈련에만 매달린다.

어느 날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한 전력도 있는 전직 유명 마라토너 정욱이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의 학교로 오게 된다. 경숙은 애원하다시피 해서 기어이 정욱에게 아들의 코치 역할을 떠맡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초원을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정욱. 하지만 초원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는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초원도 정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정욱은 매번 속도조절에 실패해 지쳐 쓰러지기는 하지만 지구력이 남다른 초원에게서 마라톤 서브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다.

한편 불성실하게만 보이는 정욱이 도통 미덥지 않은 경숙은 정욱과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말라’는 정욱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경숙. 경숙은 정욱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의 경숙. 그녀는 이제 마라톤도, 서브쓰리도 모두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데...

<말아톤>은 실제 인물인 배형진 군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 자폐증 청년이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정상인도 하기 힘든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낸 이야기는 TV와 책을 통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바 있다.

실화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말아톤>은 여타 실화 소재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말아톤>은 역사 속에 숨겨져 있던 충격적인 사건이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시간, 우리의 이웃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기적을 말하고 있다. 길을 걷다 언제라도 마주칠 수 있는 바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반성하고, 또 살아가는 이유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또한 그 편안한 공감대 속에서 보다 큰 감동을 선사받게 될 것이다.

열정과 연륜, 패기와 관록의 연기 조화
탁월한 캐릭터 해석과 뛰어난 표현력으로 언제나 맡은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배우 조승우. 타고난 능력과 넘치는 에너지, 거기에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는 성실함까지. 바로 조승우가 동세대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 이유이다. 윤초원 역에 조승우 이외의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를 옆에서 든든히 받쳐준 또 한명의 배우가 엄마 경숙 역의 김미숙이다. 오랜만에 영화 연기에 도전하는 김미숙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TV 드라마에서 쌓아온 오랜 연륜과 내공을 증명하듯 여유 있고 편안한 모습으로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주인공 조승우와 김미숙 이외에도 <말아톤>에는 많은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고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여온 코치 역의 이기영, 대작 드라마들의 주인공 아역을 도맡으며 어느덧 연기경력 10년차에 접어든 아역스타 백성현 등 뛰어난 연기자들이 포진, 빛나는 연기로 작품에 힘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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