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촉 전등불의 행복을 아시나요
30촉 전등불의 행복을 아시나요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8.04.09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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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 강대진 제어계측팀장

야, 불 들어왔다. 아이들이 먼저 전등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고 소리를 지르면 30촉 전구의 백열등에 불이 켜지고, 거리에는 삿갓을 쓴 가로등이 골목을 비추며, 그렇게 집집마다 불이 켜졌다. 그 시절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전깃불의 소중함을…

해는 벌써 지고 어두운데 30촉 전등불이 들어와 집안은 다시 밝아지고 어머니가 지어놓으신 밥을 밥그릇에 담으시면 늦은 밥상에 둘러앉은 아이는 벌써 숟가락을 빨며 어머니의 두 눈만 빤히 쳐다보던, 그 아이가 이젠 장년으로 커서 전기의 명장이 되어 나라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한 달 전, 취재를 위해 왔었던 당진을 다시 가는 날 봄은 이미 강산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그렇게 잠입한 봄은 겨우내 입고 다니던 두꺼운 외투를 벗겨냈고 나무마다 가지들이 실눈을 뜨게 했고 산수유, 유채꽃들이 피어날 준비로 산등성이가 한껏 부풀어 있다.

발전소의 모습은 늘 바라만 보아도 우렁차고 힘이 느껴진다. 아마도 연료의 힘이 전환된 거대한 엔진의 에너지가 전달된 때문은 아닐까. 발전실을 지나 건물을 올라가자 당진화력본부 시운전실 계측제어팀의 강대진 팀장이 반갑게 맞았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하게 생긴 강대진 팀장의 첫인상은 악의가 없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어릴 적 고향인 부산에서 제한송전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던 얘기는 우리나라 전력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뤄낸 민족이다. 사회가 그렇고 경제가 괄목할 성장을 한 이면에는 기간산업을 위해 기획하고 헌신해온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현장 곳곳에 배어있다.

“처음 한전에 입사하시게 된 동기도 어쩌면 어릴 적 겪었던 전기의 힘에서 얻어진 게 아닌가하고 가끔 생각합니다. 제한송전 시절 어릴 적 우리가 살던 집은 오후 여덟 시에 전깃불이 들어오고 새벽 다섯 시에 전깃불이 꺼지던 지역에 살았습니다. 큰 도로 옆 약국의 형광등이 그렇게 밝게 보일 수가 없었고 그런 전기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강대진 팀장은 처음 한전에 입사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세계는 3차 석유위기니 자원전쟁이니 하며 에너지 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석탄 채광도 거의 중단된 채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최초 전등을 밝힌 이래 도시에서 관공소와 일부 가정을 위주로 공급을 시작하면서 어느 나라나 개발 단계에서 겪게 되는 제한송전의 시대를 우리도 겪어야만 했다. 

60년대에 들어 군정에서 추진한 강력한 경제부흥 정책으로 공장과 기간산업을 위한 전력 생산량 증대의 필요성이 엄청나게 요구됨에 따라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전력 공급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일부 도시나 농촌에서는 그나마 공급을 시작한 전기의 제한 송전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제한송전이지 50~60년대, 걸핏하면 전기가 나가고 공장은커녕 하루세끼 밥도 못 먹고 허리를 움켜쥐면서 일할 데라곤 농사 이외엔 할 일이 없었던 대한민국이었다.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려 해도 지을 돈이 없어서 미국의 GE사가 책임지고 자금을 동원하고 건설해 한국에 넘겨주면 전기를 팔아서 상환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말을 믿고 건설한 곳이 바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였지 않은가.

전력의 불모지에서 줄기차게 수력과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왔고 현재 20기 가량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함으로써 석유와 석탄을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도록 해온 에너지 정책의 선견지명이 우리 산업의 원동력이 됐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5달러대를 웃도는데도 불구하고 한 여름, 겨울 우리가정에 전기걱정 하지 않게 해주는 많은 전력 관계자들,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보일러를 가동하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 화력발전소 및 원자력발전소 등 오지에 근무하는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강대진 당진화력 제4발전소 계측제어팀장의 고향은 바다의 고장 부산이다. 군대생활 3년까지 남녘의 고향인 부산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운이 좋았던 것으로 그는 늘 생각하고 있다.

부산하면 떠올리게 되는 영도다리가 들어 올려질 때 다리 끝 난간까지 올라가 있는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구경하기도 했던 강 팀장은 항구에 가보면 항상 무역선의 출입항이 활기차게 보여 좋았다고 한다.

또 부산은 겨울에도 큰 추위가 없어 항상 영상의 기온이라 생활하기가 편하고, 자갈치시장에는 부산 ‘아지매’의 구수한 사투리로 화끈하게 값을 에누리 해주는 맛이 있어 좋았다. 주위에 밀양, 양산, 울산, 경주 등 경관이 수려한 산들이 많고 공기 좋고 물 맑아 주말여행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의 명물인 영도다리가 2011년 초에는 다리가 처음 지어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상판을 번쩍 들어 올려 배를 통과시키는 옛 모습대로 복원된다고 한다. 다만 원활한 차량소통을 위해 현재의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넓히고 다리 아래로 통행하는 선박의 대형화 추세에 맞춰 상판이 현재보다 조금 높게 설치된다는 것이다.

영도다리는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34년 준공 이후 하루에 두 번 씩 상판 일부를 들어 올려 밑으로 배가 지나도록 했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릴 정도로 유명세를 탔었다.

영도다리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이자 국내 유일의 도개식 교량으로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단골 약속장소로 이용되기도 했고 이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실향민들의 투신이 이어지는 등 국민적 애환이 서린 곳으로 유명하다.

고 현인 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 가사에도 등장한다. 이 영도다리가 확장·복원되면 이제 다리가 열리며 배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강대진 팀장은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남달라 움직이는 개구리, 메뚜기 등을 잡아 해부해 보기도 했고, 멀쩡한 라디오나 고장이 난 시계 등을 일일이 뜯어보며 망가뜨리고 분해, 용접하는 취미를 가져 실험해보는 등 호기심이 남달랐다. 

전기가 들어와 불이 환하게 비췄을 때 전기의 고마움을 느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무한공간의 전파를 수신해 깨끗하게 방송이 청취될 때 전기기술의 무한함을 느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전기기술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그는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군대에서 제대를 한 후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던 강 팀장은 친지 중 한분으로부터 한전 직원 모집공고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바로 지원서를 접수했는데 합격통지를 받아 이 일을 천직으로 알고 지금까지 근무해 오고 있다.

성실과 노력으로 마침내 품질명장에 올라

강대진 팀장은 1980년도에 한국전력공사 발전전기원으로 입사한 이래 현재까지 28년간 1983년 삼천포화력1,2호기(1,120,000㎾)에서 근무했으며 1996년에는 평택복합화력1~4호기(600,000㎾)에서 근무하며 알차게 전기기술의 실력을 쌓아왔다.

작년에는 당진화력 7,8호기(1,000,000㎾) 국내 대용량 발전소 시운전에 참여해 설계오류 시정, 에너지절약 설비개선을 주도적으로 완수했고 발전소 에너지 절약기술 향상을 위한 기술연마에 부단히 노력해 왔다.

또한 자기개발을 통한 이론을 바탕으로 발전설비의 품질향상 및 작업공정 개선에 노력해 수작업으로 시행되던 업무를 기계화, 자동화 하는 등 각종 에너지 절약형 공정으로 개선함으로서 총 4억2,100만원의 예산절감을 이루기도 했다.

강 팀장은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에는 울산화력본부 올해의 으뜸 울산인상을 수상했으며 발전소 운전·정비 분야에 근무하며 이뤄낸 장인정신에 대한 성과로 2004년 제정한 제1대 한국동서발전(주) 품질 명장과 제32회 대한민국품질명장에 선정됐다.

또 품질경영 활동의 성과로 2002년도에는 대통령상 수상과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및 개선사례 활동 등을 통해 각종 수상을 한 사례가 있고 담당업무에 대한 기술력 향상에도 적극 노력해 에너지 계측분야의 팀장자격, 열관리기능사, 열관리기사, 전기산업기사 등 다수의 자격을 취득함으로써 앞선 기술력과 노력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축적된 기술력을 독점하지 않고 동료와 선후배에게 전파하기 위해 강 팀장은 각종 사내 강사 활동과 담당업무의 모든 절차를 체계적으로 기록해 표준화하는 업무프로세서를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주위의 소년소녀 가장을 비롯한 불우이웃돕기 봉사활동과 환경보호를 위한 발전소 주변 정화운동 등 사회봉사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강 팀장은 기억에 남는 근무지로 울산화력본부를 꼽았다. 계측제어분야 유지·정비 경험을 바탕으로 울산화력 급수펌프(9대) 비접촉식 진동측정기 진동 과대지시 현상을 정상치로 개선한 것 등 11건의 과제를 해결했으며, 계측제어팀 품질분임조 활동을 전개하고 사내·외 경진대회에 참가해 전국대회 동상 등 4회를 수상하는 등 적극적으로 열심히 노력했던 것 때문에 강 팀장은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지난 2004년에는 동서발전 전사품질분임조 경진대회에 참가해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바 있는데 추진과정에 초기 다소 분임조원간의 공감대 형성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솔선수범과 개선 후 정상운전의 보람으로 갈등을 해소했고 직원과의 화합도 잘돼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때로 돌발복구 작업으로 전력계통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시간을 다퉈 해결하고 기기의 정상가동을 볼 때 피로를 잊게 된다는 강 팀장. 맡은 설비가 매일 정상적으로 운전돼 전력생산이 원활히 잘되고 있을 때 가장 보람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 팀장이 근무하던 중 에피소드 하나는 1992년도 평택복합화력 시운전 할 때 주기기를 공급한 GE(general Electric)사의 기술자와 함께 일하게 됐는데 한국가스공사와 가스사용량 문제가 생겨 계약사항에 빠져있는 가스유량계를 신규로 설치하는 비용을 물었을 때 GE측에서 미화 2만 불을 요구해 온 것을 한화 200만원으로 설치해버려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일이다.

품질개선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검증으로

당진화력본부 제7,8호기 계측제어팀장으로 근무하는 강대진 팀장이 맡고 있는 업무는 발전소의 신경계통이라 할 수 있는 각종기기의 온도, 압력, 무게, 유량, 변위를 측정하고 적정량으로 조작량을 제어하며 발전소 운전원이 중앙제어실에서 기기 운전 상태를 감시할 수 있게 각종 감시설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관리하는 업무다.

“그동안 잠을 자다가도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부지기수로 발전소에 불려 들어와야 했지만 묵묵히 달려와 정상운전이 되는 것을 같이 보람으로 느낀 동료들, 개선활동 과정에서 개선결과가 미흡해 보일러·터빈 현장의 수 없는 확인으로 귀가가 늦어졌지만 말없이 따라준 동료에게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장남인 강 팀장은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항상 기대를 많이 하셨고 배려도 많이 해주신 부모님께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주 전화라도 드려야지 하면서도 잘 지켜지지 못해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결혼 후 27년이나 됐지만 결혼기념일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도 불평 한번 안하고 열심히 내조를 잘 해준 아내 덕이라며 그런 아내에게 늘 고맙다는 강 팀장은 ‘품질 명장’ 수상도 아내 덕분에 된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직장에 다니는 장남과 취업을 준비 중인 작은 아들을 둔 강 팀장은 늘 ‘근면하고, 겸손하게 살아라’ 하는 말을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해도 우리의 생활에 항상 적용될 수 있는 실천의 가훈이라고 생각해 가족들에게 늘 그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평소 체력관리를 위해 속보로 걷기와 골프연습을 하루 1시간 정도하고 있는 강대진 팀장. 그의 취미는 탁구, 운동부족이 되기 쉬운 직장생활에서 탁구로 짧은 시간 직원들과 웃고, 땀 흘리고, 어울릴 수 있기 때문에 좋다며 자신은 늘 자기의 목표달성을 위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항상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품질개선이란 눈앞의 전시효과를 위한 건수 위주의 개선보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검증으로 부작용 없는 개선이 실행될 때 진정으로 품질경영활동이 회사의 수익창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에너지 원천인 발전설비는 수천 개의 기기가 제 기능을 발휘할 때 양질의 전력이 생산이 된다. “설비의 차기 계획예방 정비공사까지 무고장으로 운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사원들의 기기에 대한 지속적인 눈길과 손길이 닿고 끊임없는 설비개선과 보강 등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강 팀장은 새로 입사한 후배들에게 “내 기술이 최고라는 자만심을 가지기 보다는 늘 부족하다는 자세로 항상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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