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논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논의
  • EPJ
  • 승인 2018.04.09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렉트릭파워] 아파트에서 난방비를 실제보다 훨씬 많이 거두자 주민 A가 난방비 비리를 폭로하면서 이를 결정한 입주자대표를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 북에 게재했다. 이를 계기로 난방비가 과도하게 걷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시정하는 효과를 거뒀지만, A는 정보통신망이용법의 명예훼손죄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A의 문제제기로 난방비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뒀고 해당아파트가 난방비를 지나치게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입주자대표자의 명예는 실추됐기 때문에 유죄가 된 것이다.

형법 제 107조는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고, ‘허위 사실을 적시할 경우’에는 더 무거운 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 명예가 훼손된 경우에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110조)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정보통신망법 제 70조에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고 공적 관심사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인격적 권리가 타인에 의해 침해받지 않을 인격권과 명예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양 권리가 충돌할 경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구체적 사실이 기재돼야 하며, 다소간의 과장된 표현은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 적시로 본다. 그리고 사실적시가 진실한 사실이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공공의 이익이란 널리 국가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 또는 특정 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며 폭 넓게 해석한다.

최근 성추행 고발 등과 관련해 피해자가 입은 사실을 그대로 인터넷에 게재했더라도 그로 인해 상대방의 명예가 훼손됐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 규정 때문에 성폭력 사실 등을 알린 것 자체만으로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해 처벌받을 위험에 노출되고, 위법성 조각사유인 ‘공공의 이익’은 그 해석기준이 모호해 ‘공익을 위하지 않은 진실은 발설하지 말라’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주장한다. 즉 법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의 잘못된 명예를 보호해 주고, 진실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 규정은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에 대한 견해차가 있고,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해 법관마다 판단을 달리할 여지도 있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적용에 성폭력 등 혐의 사건에 대해선 배제하는 입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비방할 목적으로’하는 경우에만 처벌토록 함으로써 범죄구성요건을 가중하는 입법제안도 있으며, 아예 모욕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안도 있다. 그런데 세계적인 추세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적 처벌을 하지 않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 민사적 손해배상 등으로 대처되고 있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우리나라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생각건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거나 약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무산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만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인의 명예·인격·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간과할 수 없으므로 이 규정을 존속시키는 것은 합당하다.

대신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비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에 한정해 처벌하는 방식으로 범죄구성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법원이 약자의 고발권이나 부조리개선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에 적합하도록 이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진실과 사실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프라이버시·명예가 동시에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327 (빅토리아오피스텔) 1111호
  • 대표전화 : 02-3452-8861
  • 팩스 : 02-553-2911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윤석
  • 법인명 : (주)전력문화사
  • 제호 : 일렉트릭파워
  • 등록번호 : 서울 라 11406
  • 등록일 : 2007-01-24
  • 발행일 : 2007-01-24
  • 발행인 : 신경숙
  • 편집인 : 신경숙
  • 일렉트릭파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일렉트릭파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pj.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