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본능적인 방정식, 인간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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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필 기자
  • 승인 2007.04.03 2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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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발견] 박사가 사랑한 수식

한 수학자가 있다. 그는 모든 사물과 원리,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수학의 논리로 이해하고 적용한다. 그의 대화는 항상 음성과 언어를 넘어 수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런 수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80분 동안의 기억만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80분이 오면, 그는 새로운 자신이 되어 예전과 똑같은 물음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 여자가 있다. 27살의 쿄코는 10살 난 아들이 있다. 생활을 위해 전문적인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늘 마음에 걸리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멋진 싱글 맘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난다. 첫 만남에서 박사는 이름이나 나이를 묻는 대신 여자의 신발 사이즈를 묻는다. 그녀의 사이즈는 24, 박사는 24는 4의 계승인 고결한 숫자라면서 여자에게 한없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한 그녀의 전화번호인 576-1455는 1억 안에 존재하는 소수의 숫자와 같다면서 굉장하다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렇게 우연처럼 보이는 사람의 인연조차 수를 통해 아름답게 이어내는 박사의 순수한 열정에 동화되어 가는 그녀는 그를 통해 수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나가기 시작한다. 여자의 생일인 2월 20일(220)과 박사의 시계에 적힌 일련번호 284가 우애수(220의 약수의 총합이 284이고, 284의 약수의 총합이 220)인 것처럼 그들도 수많은 인생과 숫자의 톱니바퀴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정을 나누게 된 것이다.

야구 모자를 즐겨 쓰는 한 소년도 있다. 그의 엄마는 가정부로 일하기 때문에 바쁘지만 둘 사이에는 끈끈한 애정이 있고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어 소년은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 그러던 중 엄마가 일하던 곳의 박사가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고 박사는 소년에게 누구에게나 우정을 나누어 주라는 의미에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기호 ‘루트(√)’를 별명으로 붙여준다.

박사의 배려로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된 소년 루트와 박사는 야구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매개로 세대를 뛰어넘는 소중한 우정을 키워나가고 소년은 박사에게서 방대한 우주를 담은 고결한 수학의 세계를 배우게 된다.

영화는 소년 루트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 앞에서 자신과 박사의 인연을 들려주면서 시작한다. 선생님이 된 루트는 박사가 자신에게 알려준, 사람과 자연을 넘어 우주를 연관시키는 수학의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려 노력한다.

관객들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루트 선생의 제자가 되어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고 따뜻하게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연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거기에 베스트셀러였던 완성도 높은 원작(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야 요코)과 일본 영화 특유의 건조함과 잔잔함이 함께 어울려 특별한 사건 하나 없이도 관객들의 가슴 깊은 곳에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속의 박사가 사랑한 수는 소수이다. 소수란 1과 자신을 제외한 다른 어떤 수로도 나누어 지지 않는 정수를 말하며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는 본래의 자신, 유일무이하고 깨끗하며 타협하지 않는 고고함을 지켜나가는 숫자로 풀이된다. 이러한 소수처럼 박사는 고결함을 지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신의 겉옷 여기저기에 핀으로 끼워놓은 메모를 보고서 그제야 스스로 자신의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을 반복하는 박사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동정보다는 동경이 되는 것은 그가 아마도 소수의 고고함을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업을 끝마치면서 루트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즉 오일러의 공식에 대해서 설명하며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나 들에 핀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수식과 수학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라 말한다. 이어서 그는 수학에 애정을 가지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며 직감을 갈고 닦아서 풍부한 감성을 키우면 반드시 복잡해 보이는 수식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학창시절 이가 갈리도록 수학을 싫어했던 필자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토록 멀게 느껴졌던 숫자와 수식들이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은 박사와 쿄코, 그리고 루트가 보여줬던 서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우애수처럼 감동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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