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환자에 대한 국가의 강제수술 위법성
한센병 환자에 대한 국가의 강제수술 위법성
  • EPJ
  • 승인 2017.04.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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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파워] 어느 시대나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한센병(일명 나병) 환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육지와 격리돼 소록도에서 살게 된 것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시대부터였다.

일본은 1916년 조선총독부령으로 ‘도립 소록도 자혜의원’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전역의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끌어다 수용했다. 그러면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남성에게는 불임수술을, 여성에게는 낙태수술을 하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해방된 이후 우리나라는 1954년 전염병예방법을 제정하면서 한센병을 비교적 전염성이 약한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다른 3종 전염병인 결핵, 성병과는 다르게 한센병에 대해서만 강제격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소록도 격리시설을 계속 운영했다.

격리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이 남녀동거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정관절제수술을 조건으로 허용했고, 여성환자가 임신을 한 경우에는 낙태를 하지 않으면 수용기관에서 퇴소토록 했다. 결국 사회복귀에 두려움을 느낀 환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달리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소록도 병원에서 단종 및 임신중절수술을 한 200여 명의 환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법원은 정관절제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에게는 각 3,000만원씩,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각 4,000만원씩을 배상토록 했으나, 2심 법원은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배상액을 일률적으로 1인당 2,000만원씩으로 감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는데(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230535 판결), 대법원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의료행위의 주체가 설명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환자의 의료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행위로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한센병은 1950년대에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고 정부도 3종 전염병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환자를 격리수용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이 나쁘다는 판단 아래 격리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불임시술을 시행했다. 임신한 경우에는 중절수술을 요구했으며, 거절한 경우에는 수용기관에서 퇴소시키는 등 사실상 수술을 강요했다.

아울러 환자들의 교육수준이 낮고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기 전에 한센병이 유전병이 아니며 전염성도 거의 없다는 충분한 의학정보를 제공해야 함에도 이를 제공하지 않아 정확한 자기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형식적인 동의를 받아 시행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다.

나아가 헌법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사생활 자유 등을 침해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 것으로서 행위자인 국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무가 있다.

둘째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한센인피해사건법에 따라 2010년 6월 24일부터 2012년 6월 27일 사이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이 이뤄졌고,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도 2013년경에 발행한 보고서에서 한센인피해사건법의 개정 등을 통한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촉구한 사실 등이 인정되므로, 원고들은 피해자 결정시까지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으며, 장애기간동안에는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아니하는 바, 원고들이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소를 제기했으므로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국가의 항변은 이유가 없다고 했다.

환자들이 그 동안 침해당한 인권유린이나 사회적 냉대를 생각하면 좀 더 일찍 국가가 피해자들의 피해보상을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특히 많은 피해자 중 소송을 제기한 환자들만 법원에 의해 배상을 받고 나머지는 아무런 구제도 받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행복추구권을 적극 보호해야 하는 것인데도 오랫동안 배상책임을 부인하면서 소송을 이어온 것은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는 적극적으로 국민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길 소망한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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