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일꾼 송전맨을 만나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일꾼 송전맨을 만나다
  • 한동직 기자
  • 승인 2007.04.03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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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 인] 서울송변전사업소 송전맨 박창배 소장

전선을 타고 작업 중인 활선공들의 모습. 
그들의 아침이 푸른 것은 아직 그 밤이 채 떠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활선공들의 하루는 어둠을 밀어내며 시작된다. 새벽 잠기를 툭툭 털고 일어나 먹는 아침의 밥 한 공기는 우주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기능을 찾지 못한 위를 달래기나 하듯 차가운 물 한 컵을 쭈욱 들이키면 푸드득 솔잣새처럼 정신을 차린 속내로 따끈한 밥 한 술 넘어간다.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저 멀리 실루엣으로 보이던 철탑이 점점 눈앞에 가까워지면 전기원은 날개를 달듯 작업복 뒷주머니에 꽂힌 목장갑을 낀다. 저기를 한 번에 오를 수는 없을까, 하지만 현장의 무거운 철근들과 검은 전선줄 앞에서 아침은 묵묵한 현실이 된다.

하루 온 종일 비가 오는 날이다. 그날 오후 빗줄기를 헤치고 외곽도로를 달려 덕소를 가는데 생각보다 멀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지만 서울송변전사업소 성동출장소가 자리잡고 있는 그곳은 덕소역에서 약 15분 거리. 예전의 기억으로는 텅빈 벌판에 변전소 하나 덜렁 서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동네 한복판이 돼 있다.

박창배 소장.
철문이 열리고 변전시설을 지나 건물 이층에 들어서니 사무실 옆방에서 벌써 나와 반겨주는 이가 있다. 한눈에 그분이 박 소장임을 직감할 수 있다. 박창배 소장, 만나기 전 서울사업소에서 전해들은 얘기로는 정년을 2년 여 남긴 것으로 아는데 예상 외로 젊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오랜 등산과 철저한 개인관리에서 비롯된 결과다.

어떤 사람도 3D업종임을 부인하지 못하는 송전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박 소장이지만 외모에서는 전혀 험한 태가 없다. 박 소장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서울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인데 수유리에서 태어나 업무적인 걸 빼면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아마도 부친의 사랑을 풍부하게 받았는지 얘기 중 가족사에서 부친의 얘기를 많이 했는데 실제로 부친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박 소장은 아마도 송전 출장소장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을 성 싶다.

학과의 전공이 건축이고 매일 독서에 빠져 공부나 다른 일에 의욕이 많지 않던 박 소장을 아버지는 한전연수원에서 실시했던 직업훈련교육과정에 들어가 전기에 입문할 것을 권유했고 그것으로 박 소장의 꿈과 미래가 달라지게 됐다. 사실상 송전업무는 힘들고 고된 일이다. 맨땅에서 하는 일도 일하다 지치면 헉헉 숨이 가슴 끝까지 차는데 저 아득한 상공의 전선줄에 생명을 의지해 작업을 한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박 소장이 지금까지 살아온 하루는 짧았다. 그는 많은 시간을 낮게는 50~60m의 상공에서, 심지어는 아래서 올려다보면 줄에 앉은 새처럼 보일 정도인 높이 220m의 고공에서 보내왔다. 왜냐하면 아직도 박 소장은 송전전기원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이 일을 시작한 것은 37년 전이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한창 산업과 기반시설 공사에 총력을 쏟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항상 일손이 부족해 연중 한 번도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다. 요즘은 일년 중 절반은 일이 없다. 박 소장처럼 인력송출사에 소속되지 않고 KPS에 소속된 경우는 작업이 없을 때는 일상의 업무를 보면 되지만 일급 또는 계약제의 송전전공들은 일년 중 6개월은 일거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발전사들의 발주가 1월부터 3월까지는 거의 없고 6월부터 8월까지도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루 일급이 비교적 센 편이지만 업무의 난이도나 월중 또는 연중 일할 수 있는 날 수에 비하면 높은 게 아니다.

IMF를 전 후로 송전업계는 인력 순환이 급격히 둔화됐다. 다른 산업의 발달에 비해 인력에 대한 교육의 질도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한전의 통계상으로는 송전원이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그나마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인의 경우는 숫자가 더욱 미미한 실정이다. 강좌와 실기를 겸해 전담할 전문교육시설이 절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요즘은 송전설비를 하는 전기원들에는 30대가 드물어요. 힘드니까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공동화현상이라고나 할까요. 힘들고 일정한 생활이 어려우니까 이동이 많지요”라며 박 소장은 최근의 근무 실상을 일러준다. 박 소장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71년 한전보수(주)에 입사해 80년 10월까지 잘 근무하다가 돌연 사표를 냈다.

초기에는 전력산업의 역군으로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지만 당시의 현장근무는 더욱 열악했다. 회사를 나오면서 사유는 개인사업이 목적이었지만 실상을 보면 당시의 정권이 전권을 휘두르던 기업 통폐합의 시대상이 숨어있다.

사업은 실패로 마감했고 세월도 4년이 흐른 뒤 시대도 변해 다시 평생직장의 꿈을 안고 박 소장은 재입사를 선택했는데 그나마 근무 조건은 처음 입사 때 보다는 많이 개선돼 있었다. “아! 여기서 이젠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정말 그 동안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열심히 일 했습니다” 박 소장은 그날의 각오를 지금도 되새기고 있다.

일하며 가장 큰 보람은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회사에서 전력공급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전국 곳곳에 고장 없이 밝은 빛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때가 최고의 보람이다. 그것을 위해 고장건수 관리로 고장의 발생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평가결과를 얻을 때가 박 소장은 가장 기쁘다.        

직원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있는 박창배 소장(사진 왼쪽 2번째)
“작업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요?” 시간이 이쯤 되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어려움은 송전설비 건설의 입지가 대개 산이고 오지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거죠. 덫에 발목이 찍히는가 하면 올가미에 걸리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산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라면을 끓였는데 실수로 큰 냄비를 엎어버려 쫄쫄 굶고 저녁까지 일하다가 산에서 내려와 모두 허기져 쓰러질 뻔 했을 정도로 작업장이 오지다.

“계절에 따라 어려움이 다른 데 겨울의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이 전선의 착빙이죠. 눈덩이가 전선에 얼어붙어 늘어짐이 생기거나 푄현상에 의해 전선이 엉기기도 해서 정전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지난 2001년 2003년에는 눈이 많이 와 산간지방에서 단락사고 가 발생했는데 현장까지 출동하는 데만도 2~3일이 걸려 애를 먹기도 했다.

사고는 산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작년 2월에는 제주에서 선박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에 들어온 배의 닻에 전선이 걸려 사고가 났고, 신안에서는 바지선 크레인이 전선을 끊어 먹기도 했다. 한편 과천에서는 건설현장의 중장비차가 허가 없이 진입해 전선을 해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의 부주의가 사고로 이어지고 결국 고스란히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박 소장은 주의를 당부한다.

또한 최근에는 이런 작업상의 애로 외에도 민원제기가 많아져 더 힘들다. “한편으로는 민원인들의 재산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중대한 문제겠지만 농지건 산이건 저마다의 소유주들이 다 자기네 땅으로는 한 평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철탑을 어디다 세우고 전선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극심한 지역이기주의는 큰 문젭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한 때는 볼링, 스키 등을 즐기기도 했지만 박 소장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동경하는 건 산이다. 20살 때부터 암벽타기를 즐겼고 국내의 웬만한 산들을 섭렵했다. 지금의 날렵한 몸매는 그때에 다져진 듯하다.

정년퇴임을 2년 5개월 남긴 박 소장의 퇴임 후 꿈은 아직 아무에게도 말은 안했지만 좋은 기술을 가진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동료 후배들이나 새로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금껏 탐구하고 노력했던 지식들을 하나라도 더 전하려고 애쓰고 있다.

“자신이 선 그 자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투게 되는 건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함 때문이니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있는 이익을 추구하라”고. 또한 송전전공일을 처음 시작하기 위한 새내기들에게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며 안전의 습관화를 강조하고, 부단한 자기계발로 전력산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평생을 송전에 바친 노장은 충고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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