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외 2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외 2권
  • 배상훈 기자
  • 승인 2016.10.11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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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8,000원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 그녀가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출간했다.

2011년에 나온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물론 보다 아득한 세월이 시인과 함께한다. 1987년에 등단했으니 어느덧 시력 30년을 바라보게 됐고, 1992년 독일로 건너가 여전히 그곳에 거주하고 있으니 햇수로 25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라고 했던 그녀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시집을 열면, 차마 “그냥, 세월이라”(네 잠의 눈썹)하고 지나치기엔 묻고 싶은 말들이 넘쳐 연신 쌓여가는 그 시간의 내력 속에 한 발 한 발 들이게 된다.

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1만2,500원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신간 스파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무희 ‘마타 하리’에 관한 이야기다.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을 뜻하는 마타 하리는 1917년 10월 15일, 자신의 이름처럼 새벽 여명 아래에서 총살됐다. 그녀는 눈을 가리지 않고 묶이기도 거부한 채 죽음을 당당하게 응시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인 채 관능적인 팜므파탈로 회자돼온 것과 달리, 코엘료의 신작 스파이 속 마타 하리는 사회적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용기 있게 맞선 인물로 그려진다.

마타 하리는 이중 스파이였을까, 아니면 전쟁의 광풍 속에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이었을까.

실제로 그녀가 이중 스파이로서 독일에 프랑스의 기밀사항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프랑스 법원은 마타 하리가 빼돌린 군사 기밀로 인해 연합군 5만명의 목숨이 희생됐다고 했지만 정작 그녀가 독일에 프랑스의 기밀 정보를 넘겼다는 증거는 단 1건도 제출되지 않았다.

정선 사서

최석기 편역 / 창비 / 1만6,800원

그동안 사서는 ‘완역’, ‘정역’이라는 이름을 단 두껍고 읽기 어려운 책들이 주종을 이뤘다.

그중에서도 논어에 대한 번역·해설서만이 넘쳐났고, 맹자는 그보다는 조금 적은 정도, 대학과 중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 사람들은 해석의 깊이는 둘째 치고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서 해설서를 찾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최석기 교수는 특정 고전만이 아닌 사서의 정수를 골고루 가려 뽑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균형감 있게 사서를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책은 매년 2만부 가량 판매되는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 ‘정선 목민심서’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정치인이나 기업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히는 ‘목민심서’의 방대한 내용을 한권에 간추림으로써 ‘정선 사서’ 역시 고전의 빛나는 지혜를 오늘날의 삶의 이정표로 삼기를 바라는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

특히 사람이 되는 공부가 무엇인지, 참다운 정치가 무엇인지를 몸소 일깨워주는 성현의 가르침을 비롯해 우리가 일상이나 사회생활에서 접하는 사자성어들, 가슴에 새기고 싶은 명구들을 두루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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