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연비조작과 한국소비자에 대한 배상 문제
자동차 연비조작과 한국소비자에 대한 배상 문제
  • EPJ
  • 승인 2016.07.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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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이 자동차 연비가 우수한 것처럼 속여 자동차를 판매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공개한 합의서에 따르면, 차주들은 사건이 알려지기 전인 2015년 9월 전미 자동차딜러협회(NADA) 중고차 가격으로 차량을 되팔거나 배출가스 장치 개선을 위해 무상으로 차량수리를 받는 것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또 환불이나 수리와 관계없이 2.0L TDI 디젤엔진을 장착한 아우디와 폭스바겐 차량 소유주 47만5,000명은 1인당 5,100달러부터 1만달러 상당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특히 연방법원은 디젤 사태가 불거진 2015년 9월 18일 이후 차량의 매도자와 매수인에게도 절반의 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들에게 지급된 배상액의 일부는 환경악화에 대한 부담금과 배기가스 저감장치 개발비로도 사용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외제차 선호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구매량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실용적이고 연비가 좋은 것으로 평판이 난 폭스바겐이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미국 소비자처럼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폭스바겐 측은 미국에서의 합의안이 미국 이외 나라에서 법적의무를 부담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자동차의 질소산화물(NOx) 배출한도에 대한 미국의 규정은 다른 국가보다 엄격하며, 배출가스 해결책도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배출가스 시스템을 전면 교체해야하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소비자에게는 연비조작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느끼지만 위법으로 인한 배상책임은 없다는 게 폭스바겐 측 입장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연비조작 차량을 구입한 미국 소비자는 최고 1만달러의 배상을 받으면서 차를 되팔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만일 정부의 잘못된 환경정책이나 입법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정부는 관련 정책을 고치고 법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집단소송(class action)을 인정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오직 증권분야에 한정해 집단소송이 인정되고 있다. 2005년 우리나라가 제정·시행한 ‘증권관련분야 집단소송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법을 제정할 당시 다수의 학자와 시민단체에서는 집단소송의 적용분야를 확대할 것을 주장했으나, 전경련 등 대기업 측의 거센 반발로 인해 증권분야에 한정된 반쪽짜리 법으로 제정되는 바람에 현재 사문화된 채 방치돼 있다. 증권분야도 물론 집단소송이 필요하지만, 일반적인 제품을 구입하는 일반 소비자를 비롯해 공정거래분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보호법제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단체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지 않아 그 유용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미국의 소비자집단소송은 소비자 수십만명이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 불과 20~50명 정도의 소비자가 대표자를 정해 소송을 제기하고, 합의된 배상액은 소송에서 특별히 제외해 달라는 신청을 하지 않는 모든 해당소비자에게 분배된다. 물론 합의나 판결 후 법원에 피해자 신고는 해야 한다.

또 미국의 집단소송은 단지 피해 배상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치유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위 사안에서도 배상액의 일부는 배기가스 저감장치 개발을 위한 연구기금으로 사용되고, 환경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

특히 손해배상액을 확정함에 있어 우리나라는 위법행위와 관련해 상당인과 관계있는 손해만을 배상액으로 인정하는 데 반해, 미국은 특정한 위법행위에 대해 차후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기업으로부터 충분하고 적절한 배상을 받으려면, 소비자피해도 집단소송을 통해 다룰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집단소송법 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조금 무서운 감시견이 있어야 위법행위도 방지되고 힘없는 다수의 서민들도 제품을 안전하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정식 교수는…

서울대 법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으며 중앙병무청 행정심판위원, 대한주택보증(주) 법률 고문, 서울지방경찰청 법률 상담관,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청솔 대표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법률고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피해자배상심의위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이해’ 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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